건설

신뢰 회복 나선 중흥건설…건설업계 'PF 관행' 새 국면 맞나

한석진 기자 2025-06-12 09:00:00
중흥그룹 사옥 전경. [사진=중흥그룹]

[이코노믹데일리] 국내 대표 중견 건설사인 중흥건설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180억원과 검찰 고발 조치를 받으면서도 기존 사업 전략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고 있다. 공정위는 중흥건설이 총수 2세가 대주주인 계열사에 수조원 규모의 무상 신용보강을 제공해 경영권 승계를 지원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건설업 특성과 PF 금융 관행을 감안할 때 제재 수위가 과도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9일 중흥건설이 지난 10년간 중흥토건과 그 계열사 6곳에 대해 3조2096억원 규모의 자금보충약정을 무상으로 제공한 것은 정당한 대가 없이 이뤄진 부당지원이라고 밝혔다. 자금보충약정은 PF 대출 원리금 상환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자금을 메워주는 신용보강 수단으로 사실상 연대보증에 준하는 효력을 가진다. 공정위는 이를 통해 중흥그룹 2세 경영자의 사익을 편취했다고 보고 건설사 중 처음으로 해당 약정을 제재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PF 사업은 수천억원대 자금이 오가는 고위험 고수익 영역으로 대형 금융기관들도 단일 시행사의 신용만으로는 자금 집행을 꺼리는 구조다. 이에 따라 그룹 차원의 신용보강은 건설업계에서 오랜 기간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한 중견 건설사 임원은 “신용보강 없이는 PF 사업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를 모두 부당지원으로 해석하면 국내 건설산업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중흥건설 측은 이번 신용보강이 그룹 전략에 따라 이뤄진 정상적인 사업 협력이라는 입장이다. 중흥토건의 시공능력 확보를 통해 그룹 전체의 경쟁력을 키우고 대우건설 인수 같은 대형 프로젝트 추진 기반을 마련하는 등 장기적 관점에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조치였다는 것이다. 내부 관계자는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공동 성장을 위한 전략적 투자”라고 강조했다.
 

중흥건설의 신용보강을 기반으로 중흥토건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2007년 인수 당시 12억원에 불과하던 기업 가치는 시공능력평가 16위 건설사로 성장했고 누적 매출 6조6780억원 영업이익 1조731억원을 달성하며 대우건설 인수를 성사시켰다. 2023년에는 중흥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며 정원주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도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번 제재는 최근 호반건설 제일건설 대방건설 등을 겨냥한 공정위 조치와 궤를 같이한다. 이들 모두 총수일가 계열사와의 내부 거래 또는 입찰 과정에서 문제 소지가 제기된 사례다. 공정위는 “중견 기업집단의 부당지원행위를 적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동일인인 정창선 회장을 고발 대상에서 제외한 점은 그룹 최고경영진이 이번 사안에 직접 연루됐는지 여부를 놓고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전문가들은 정상적인 사업 협력과 부당지원의 경계를 제도적으로 명확히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지적한다. 한 공정거래 전문가는 “건설업의 특성상 신용보강은 불가피한 경우가 많지만 거래 조건이나 대가 산정 기준이 불투명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현장 실무를 반영한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흥건설은 이번 사안을 계기로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거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계열사 간 신용보강 제공 시 외부 평가 및 대가 산정 기준을 명문화하고 시공지분 확보 원칙도 검토 중이다. 대우건설과 공동으로 추진 중인 대형 개발사업에서는 투명성 강화를 위한 위원회도 운영할 예정이다.
 

공정위 제재가 단기적으로는 기업 이미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이번 사건은 건설업계 전체가 계열사 간 협력의 공정성과 실효성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중흥건설은 제도 변화 흐름에 발맞춰 지속가능한 성장 전략과 외부 신뢰 제고에 주력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