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자수첩]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투자의 딜레마

김인규 기자 2025-05-19 17:52:28
김인규 산업부 기자
[이코노믹데일리] 최근 기업과 개인은 모두 투자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기업의 투자는 양날의 검이다.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하지만, 계획대로 시장이 흘러가지 않으면 되려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곤란한 딜레마다.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경쟁력이 약화되며 도태되고, 재무구조 개선 목적이더라도 현금을 과도하게 확보해두면 투자와 주주환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반면 적극적인 투자는 이자비용, 고정비용, 차입금 등을 증가시키고 재무비율을 악화시켜 기업의 펀더멘털을 위협할 수 있다. 단기간 내에 성과가 나지 않으면 주가는 떨어지며 늘어난 비용이 기업에게 부담을 준다.

애초에 개발도상국, 신흥국만큼의 고성장을 이어가는 시기가 아니라면 어떤 선택을 하든 원성을 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투자를 통해 매년 고성장을 이어가고 주주에게 환원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이상적인 기업관은 현실에서 매번 실현되긴 어렵다. 특히 지금처럼 국가가 저성장으로 들어선데다가 리더십이 부재하고 무역 갈등이 고조되는 시기엔 더욱 그렇다. 

실제 회복 싸이클을 예상하고 과거 대규모 투자를 이어온 석유화학 업계는 여전히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22년, 2023년에 각각 올레핀생산시설(MFC)에 2조7000억원, 중질유분해설비(HPC)에 3조5000억원 투자를 마무리했으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72%, 89% 줄었다. 에쓰오일은 이번 분기 영업손실 215억원으로 적자 전환했으며 9조2580억원을 투자하는 샤힌 프로젝트가 오는 2026년 상반기 준공 예정이라지만 수익 실현이 요원하다.

배터리 기업인 삼성SDI와 소재 기업 포스코퓨처엠도 최근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해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꾀하고 있으나 오는 2027년 전기차와 배터리 수요가 정말로 회복될지는 의문이다. 투자를 위한 경영 판단을 내릴 때마다 고려해야 할 요소도 많다. 외부적으로는 주주가치 훼손 등 투자자로부터 이해관계 상충을 지적받을 리스크가 있고 내부적으로는 경영진 간의 의견 차도 있다. 실제 세계 1위 제련기업 고려아연의 친환경 신사업 '트로이카 드라이브' 추진은 경영권 분쟁을 촉발시키는 단초가 됐다.  

개인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1분기 서울회생법원이 밝힌 개인 파산·회생 접수 건수는 8811건으로 4년 전 같은 기간(6338건) 보다 39% 증가했다. 사업 실패나 실직 등으로 인한 파산 비율은 지난 4년간 7~8% 감소한 반면 부동산 등 투자 실패는 전체 파산 원인의 11%로 지난 2021년(2%)의 5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일명 '갭투자 파산'이다. 돈 없는 청년은 변동성이 곧 위기이자 기회라며 '빚투'로 주식을 하고 미래가 막막한 중년은 '영끌'로 부동산을 산다.

하지만 개인의 잘못으로 모든 문제를 떠넘길 순 없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근로소득만으로는 미래를 꿈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다고 웅크리고만 있으면 기술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다. 기초 체력 없이 차입금만 늘려가는 부실한 기업에 대해서는 재무구조를 지적해야겠지만 혼란스러운 관세 전쟁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결국 투자를 적극적으로 이어가는 기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