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과 한국상장사협의회(상장사협)·코스닥협회는 26일 서울 마포구 상장회사회관에서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상법 개정을 주도하는 금융감독원이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것으로 지난 12일 자본시장연구원 주최 세미나에서 언급된 내용의 반박 성격이다.
최대 쟁점은 상법의 '이사의 충실 의무' 조항에 '주주의 이익'을 추가하는 단 한 대목이다. 국내 증시 저평가 현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의 여러 방안 가운데 하나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이와 관련해 "상법 개정이 장기적 기업 발전을 저해하고 경영 현장의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며 "이사회의 정상적인 의사결정에 대해서도 온갖 소송이 남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법률·회계 전문가들은 상법을 개정해 이사의 충실 의무를 확대하는 대신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강화하고 합리적인 승계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사의 충실 의무란 상법 제382조 3항을 일컫는 것으로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회사에 더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으로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국내 주식 투자 인구가 1400만명이 넘고 삼성전자 주주만 500만명인데 이사가 모든 주주의 이익을 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만약 이사를 대주주의 아바타로 보고 소수 주주와 이사 간 이익이 충돌한다고 본다면 이는 이사회 제도를 폄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특히 '1주=1표(주주 평등)'가 원칙인 주식회사 제도 속에서 소수 주주의 이익 보호에 매몰되면 다수결 원칙이 오히려 훼손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평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국내법에 경영권 방어 수단이 전무하다는 점을 들어 상법을 개정하더라도 보완 법률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김 변호사는 "기업들은 자기주식을 취득해 보유함으로써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한다"며 자사주 취득 비용이 투자·고용·연구개발 등에 쓰이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주제 발표자인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로 높은 세율의 상속세와 증여세를 지목했다. 상속세·증여세가 과도하게 높아 기업을 승계하려는 지배주주의 탈법을 조장하고 이 과정에서 주가가 저평가된다는 논리다.
오 교수는 "부의 재분배가 중요하다는 국민 정서가 있지만 최근 상속 자산의 종류에 따라서는 상속세를 완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면서 "상속세를 과세하더라도 최고세율이 소득세 최고세율(45%)을 넘지 않는 30% 수준으로 정해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강성부 KCGI 대표가 작심 발언을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강 대표는 "10대 그룹의 경우 지배주주의 내부 지분율은 1.9%밖에 안 된다"며 "3%도 안 되는 지배주주를 위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야 한다는) 대부분 의견이 일부의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고 했다.
강 대표는 최근 한경협을 포함한 8개 경제단체가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건의서를 정부에 낸 데 대해서도 "경제계가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며 국민을 가스라이팅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밸류업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세미나에 참석해 "모든 주주가 합당한 대우를 보장받는 기업 지배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며 상법 개정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다만 상속·증여세 부담이 과도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정상적인 기업 승계를 억누르는 측면이 있다"며 "당국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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