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이미지 벗고 고성능 스포츠카로제로백 5.7초, 승차감·정숙성까지 겸비6600만원 넘는 가격은 구매 망설이게 해
[이코노믹데일리] 한국에 현대자동차 그랜저가 있다면 일본엔 도요타 크라운이 있다. 두 차량은 각 브랜드를 대표하는 정통 세단이자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랜저와 크라운 모두 제품의 최상·최고급 기종을 칭하는 '플래그십'으로서 성공한 사람이 타는 차로 통해 왔다.
그런 크라운이 요즘 말로 '역변(본래의 모습에서 다른 방향으로 변함)'했다. 1955년 1세대 모델이 출시된 후 2022년 단종된 15세대까지 70년간 이어 온 세단의 정체성을 확 바꿨다. 50·60대 중장년이 타는 차에서 30대, 그것도 진취적인 성향이 짙은 운전자가 내릴 법한 차로 바뀌었다. 고유한 상징인 '왕관(crown)'을 남겨둔 채.
지난 10일부터 사흘간 350여㎞를 타본 '크라운 2.4 듀얼부스트'는 그간 크라운이 보여준 이미지를 한 번에 털어버리게 했다. 한국에 지난해 출시된 이 차량은 세단, 스포트, 왜건, 크로스오버 등 4가지로 구성된 16세대 크라운 중 크로스오버 모델로 파격적인 외관이 특징이다.
크로스오버는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특성을 결합해 장르를 파괴한 차종을 일컫는데, 도요타는 16세대 크라운에 크로스오버를 추가하면서 구매층 확대를 꾀했다.
외관은 앞모습부터 가늘게 찢어진 헤드램프(전조등)와 큼지막한 그물형 그릴로 강렬한 인상을 뿜어냈다. 또한 앞유리가 시작되는 곳부터 트렁크 리드(끝단)까지 한 차례도 꺾이지 않고 하나의 곡선을 그려 내면서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듯 보였다. 바퀴는 통상적인 중형급 차량에 쓰이는 18~19인치 대신 21인치 대구경 휠과 함께 옆면이 얇은(편평비가 낮은) 타이어로 이뤄져 고성능 스포츠카 같은 느낌을 더했다.
겉모습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주행 성능도 어지간한 스포츠카 뺨치는 수준이다. 2.4ℓ 가솔린 터보 엔진에 전기 모터까지 달아 46.9킬로그램포스미터(㎏f·m)라는 엄청난 최대토크(구동력)를 발휘한다. 엔진·모터 합산 최고출력은 348마력으로 토크를 생각하면 높지는 않지만 200마력 중후반의 중형 내지는 준대형 세단을 생각하면 충분히 고성능이다. 공식 제원상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100㎞/h까지 가속 시간)은 5.7초다.
실제로 달려 보니 이러한 수치가 실감됐다. 가속 페달을 3분의1 깊이만 밟아도 속력이 빠르게 붙었다. 페달을 더 깊게 밟았더니 좌석 등받이가 몸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크라운이라는 차 이름을 바꾸는 게 맞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점에서 시트의 날개가 옆구리를 좀 더 확실하게 잡아줘도 좋겠다 싶었다.
크라운 2.4 듀얼부스트는 전기 모터와 배터리마저 연비보다는 성능을 위해 작동했다. 이 차는 하이브리드차인데도 공인 복합연비가 12.0㎞/ℓ밖에 안 된다. 그런 만큼 대부분 상황에서 엔진과 모터가 함께 돌아갔다. 고속화 도로에서 정속 주행할 때에는 모터에서 주로 동력을 끌어 쓰면서도 엔진이 계속해서 배터리를 충전했다. 40㎞/h 이하에서는 전기로만 달리며 연비를 보전했다.
폭발적인 가속 성능과 달리 승차감과 정숙성은 정통 세단 시절 명성 그대로였다. 하체가 상당히 부드럽게 조율됐는데 동력 장치와는 정반대 성격이었다. 전자식 서스펜션을 장착해 주행 모드를 '달리기' 위주인 '스포츠S+'로 맞추면 단단해졌지만 전반적인 느낌 자체는 편안한 성향에 가까웠다. 게다가 외부에서 유입되는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흔히 반비례 관계라고 생각하는 성능과 승차감·정숙성을 빠짐없이 챙겼다는 점에서 상당히 구매 욕구를 불러 일으켰지만 가격이 진정제 역할을 한다. 크라운 2.4 듀얼부스트는 단일 모델로 판매되며 6640만원이다. 분명 차는 좋은데 이 가격이면 선택지가 너무 많다. 다만 도요타 브랜드를 상징하는 내구성, 세단과 SUV 장점을 모두 얻을 수 있는 크로스오버의 활용성, 성능과 편안함의 조화를 모두 생각한다면 대안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