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LG화학 분할·삼성물산 합병 '재현 불가' 되나…상법 개정 '갑론을박'

성상영 기자 2024-06-12 17:32:50
'밸류업' 추진하는 정부, 상법 개정 작업 착수 이사의 의사결정 책임 범위, 최대 쟁점 부상 "현 상법 충분" vs "LG 분할·삼성 합병 못 막아"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투자센터에서 자본시장연구원·한국증권학회 공동 주최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 지배구조'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성상영 기자]
[이코노믹데일리] 국내 증권시장에서 주가가 저평가되는 현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목적으로 상법 개정 논의가 시작된 가운데 경제계와 금융투자업계·법조계 간 갑론을박이 오갔다. 기업이 고성장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한 후 상장하거나 계열회사 간 합병을 통해 지배주주(총수)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등 행위에 대해 정부가 사실상 제동을 걸겠다고 나서면서다.

포문은 금융당국 수장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열었다. 이 원장은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투자센터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 지배구조' 세미나에 참석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주주의 이익 보호로 확대하는 등 방안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세미나는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가 공동 주최한 것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최대 쟁점이었다. 이사의 충실 의무는 상법에 명시된 개념으로 이사회 구성원인 사내·외이사가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다.

문제는 회사의 이익과 지배주주의 이익, 일반주주의 이익이 맞지 않을 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다. 주제발표를 맡은 김우진 서울대 교수와 나현승 고려대 교수는 계열회사 내부거래에 대한 통제 강화와 주주 간 이해 충돌 상황 해소 등을 언급하며 상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우진 교수는 지배주주가 공정거래법을 회피해 사익을 편취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지적하며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를 확대해 이사회의 내부 통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공정거래법만으로 주주 간 이해 충돌과 지배주주 일가의 부의 이전을 규율하기엔 한계가 많다"고 설명했다.

나현승 교수 역시 지배주주의 과도한 영향력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꼽으면서 "일반주주의 권한과 정보 접근성을 강화하고 일반주주에 대해서도 이사의 충실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상법 개정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벌어진 가운데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언급돼 눈길을 끌었다.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 상장을 앞둔 지난 2021년 말부터 주가가 계속 떨어져 개미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외국계 사모펀드에 의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S)으로 번졌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지금의 상법이 지배주주 문제에 대응하지 않는 게 아니다"라며 "이사가 의사결정을 하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수 없고 일반주주의 손해를 어떻게 판정할지도 문제"라고 했다. 김 본부장은 "삼성물산 합병 비율이 적절하지 않다고 할 순 있는데 회사 주가가 낮다고 합병하지 말자거나 주가가 높다고 합병하자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변호사)은 "지금 상법 하에선 회사 이익을 토대로 판단할 수 없는 주주 간 거래도 이사회가 그냥 오케이한다"며 "삼성물산 합병 건과 관련해 주가가 낮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합병 안 하는 게 맞다. 너무 주가가 나쁠 땐 합병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변준호 안다자산운용 대표는 LG화학이 전지사업본부를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하고 이 회사를 증시에 상장한 사례를 들며 상법 개정에 찬성했다. 변 대표는 "LG화학 주가가 100만원대에서 정점을 찍었다가 물적분할이 되고 최근 30만원대까지 빠졌는데 이런 걸 막는 차원이라면 이사의 충실 의무가 확대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