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 주총에서 양측이 충돌하는 안건은 크게 두 가지다. 고려아연(최씨)은 1주당 결산 배당을 5000원으로 제안했고 ㈜영풍(장씨·지주회사)은 이를 1만원으로 높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씨 측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할 때 그 대상을 기존 외국 합작법인뿐 아니라 국내 법인도 가능하게 정관을 바꾸는 안도 추진 중이다. 물론 장씨 측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재계 30위권 기업 일군 75년 동업 관계 '흔들'
현재 두 집안이 벌이는 지분 싸움은 겉으로 비치기에 서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룹 최고 알짜 회사인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누가 갖는지가 이번 갈등의 핵심이라는 게 다수 시각이다. 과거 75년 동안 이어 온 최씨와 장씨의 동업 관계를 해소하고 계열 분리까지 갈 가능성이 커지는 모습이다.
영풍그룹은 1949년 고(故) 최기호·장병희 회장이 세운 합명회사 영풍기업사가 모태다. 창업 이념은 '수출 산업과 수출 진흥을 통한 한국 경제 재건'이다. 지하자원을 채굴, 수출해 일제 식민 통치로 무너진 나라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포부였다. 1960년대 본격적으로 비철금속 제련을 시작한 영풍은 세계 1위 아연 생산, 국내 재계 순위 28위 기업이 됐다. 고려아연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는 영풍전자, 영풍정밀, 영풍문고 등이다.
지금과 같은 체계는 1974년 고려아연을 설립하면서 태동했다. 이때만 해도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은 두 창업회장이 협의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1981년 최기호 회장이 별세하면서 계열사 간 경영권이 이전됐다. 1989년 말에는 이러한 작업이 마무리돼 고려아연은 최씨가, 나머지는 장병희 회장 가문이 경영하는 지금 모습이 만들어졌다.
적어도 장병희 회장이 작고한 2002년까지는 두 집안이 큰 잡음 없이 경영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 분리 이야기가 나온 것은 2019년 7월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면서다. '㈜영풍→고려아연→서린상사→㈜영풍'으로 이어지는 식이었는데 이를 끊어냈다. 당시 계열 분리설에 대해 영풍그룹은 "추측일 뿐 관련 논의는 없다"고 일축했다.
지분 관계 정리 후 영풍그룹은 장병희 창업회장 차남인 장형진 고문이 실질적인 경영을 맡고 있다. 고려아연 측 최윤범 회장은 최기호 창업회장 손자이자 최창걸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3세 승계 중 불거진 갈등, 결말은 고려아연 독립?
3세 경영 승계 준비는 장씨 집안이 좀 더 빨랐다. 장형진 고문은 2015년 계열사 사내이사직을 내려놓으며 아들인 장세준 부회장(코리아써키트 대표)과 장세환 부회장(서린상사 대표), 조카 장세욱 시그네틱스 부회장 등 3세에게 기업을 맡기는 듯보였다. ㈜영풍 최대주주는 지분 16.89%를 보유한 장세준 부회장이다. 그러나 장 고문은 최씨 집안과 벌어진 지분 싸움에 직접 나섰다.
최씨 집안에선 최윤범 회장이 2022년 말 고려아연 단독 회장으로 승진하며 3세 경영 체제에 접어들었다. 집안 내부적으론 최창걸·최창영·최창근계가 최윤범 회장을 뒷받침하는 사촌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 이들 사이에 고려아연 주도권을 둘러싼 신경전이 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최윤범 회장이 신재생에너지, 이차전지, 자원 순환 등 신사업을 이끌며 가문 내에서 자리를 굳힌 모양새다.
장씨 집안은 2019년 지배구조 개편과 동시에 3세로 지분 승계를 대부분 마쳤지만 경영권은 그렇지 못했다. 최씨 집안은 이와 반대로 경영권은 최윤범 회장이 쥐었지만 지분을 분점하고 있다. 각 집안마다 풀어야 할 숙제가 있는 와중에 집안 간 지분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양쪽 모두 일단 성(姓)이 다른 집안끼리 문제를 풀 필요가 있다.
영풍이 배당 증가와 3자 배정 유상증자 대상 유지를 주장하는 건 고려아연 경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지주사로 현금 유입을 늘리고 최씨 측의 '백기사' 확보를 제한하면서 고려아연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고려아연의 움직임에서는 '당장은 오너로서 영풍 측을 존중해주겠으나 장기적으로는 독립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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