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연말 단행된 LG그룹 인사는 옥석 가리기를 위한 사전 작업 중 하나라는 평가다. LG전자와 LG화학·에너지솔루션 등 주요 계열사에서 부회장·사장단 개편이 이뤄졌다. 권영수 부회장이 물러난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해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이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를 맞았다.
부회장단은 앞선 2022년 말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에 이어 다시 한 번 바뀌었다. 구광모 회장이 취임한 2018년만 해도 6인 체제였으나 지금은 2명으로 규모가 줄었다. 현재 LG그룹에는 신학철(LG화학)·권봉석(㈜LG) 두 부회장이 남았다. 재계에서는 이들을 구 회장 측근으로 분류하며 '구광모 친정 체제가 구축됐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CEO 그룹의 세대 교체도 눈길을 끌었다. LG의 전자 부문 계열사 가운데 아픈 손가락인 LG디스플레이는 정철동 사장이 수장을 맡았다. 정 사장은 직전 LG이노텍에 재임한 5년여 동안 이 회사 매출을 9조원에서 19조원 수준으로 2배가량 끌어올려 기대를 받고 있다. 정 사장 후임인 문혁수 LG이노텍 부사장은 차량용 부품과 반도체 분야에서 가시적 성과를 예고했다.
부회장단·CEO 개편의 씁쓸한 뒷맛을 남긴 계열사도 있다. 식음료·생활용품·화장품 등 사업을 하는 LG생활건강은 무려 18년간 회사를 이끈 차 부회장에 이어 이정애 사장이 바통을 넘겨 받았지만 이렇다 할 반전은 보여주지 못했다. 화장품이 중국에서 부진한 영향이다. 중국에서는 최근 한국 화장품 인기가 사그라지고 자국산 제품 소비가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 첫 여성 사장이기도 한 이 사장은 '계륵' 같은 존재인 중국 시장을 어떻게 할지를 두고 고심이 깊은 모습이다.
◆이차전지 '속도 조절', 석유화학 '체질 개선'
계열사 가운데 '체질 개선'이란 표현이 가장 많이 쓰일 것으로 전망되는 곳은 LG화학이다. 이차전지 소재와 석유화학이 주력인 LG화학은 변곡점을 맞았다. 이차전지와 관련해서는 전기차 성장세 둔화로 조정기에 접어들었다는 시각이 많다. 석유화학은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전망도 여전히 어둡다. 공통 과제는 공급 과잉으로 요약된다.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나오면서 투자 속도도 늦춰지는 모양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포드, 튀르키예 기업 코치와 함께 이차전지 공장을 짓기로 했다가 취소했다. 현재 추진 중인 신규 설비 투자도 시점이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전기차용 이차전지 공급 과잉이 일시적 현상인 데다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는 꾸준히 늘어나 상황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문제는 LG화학 매출의 30%를 책임지는 석유화학이다. 국내 기업이 생산한 석화 제품 가운데 중국으로 수출되는 비중은 20~30% 안팎으로 파악되는데 최근 중국이 자급자족 체제를 갖췄기 때문이다. 중국의 석화 제품 자급률을 보면 에틸렌과 프로필렌, 폴리염화비닐(PVC)은 2020년 이미 100%를 넘어섰다. 미국과 무역 분쟁을 벌이면서 플라스틱 자급을 안보 문제로 인식한 탓이다.
이들 분야에서 옥석 가리기는 신학철 부회장 주도로 이뤄질 전망이다. 신 부회장은 구광모 회장이 취임 후 영입한 첫 부회장인 동시에 LG그룹에서 '유이'한 부회장이다.
신학철 부회장은 석유화학 부문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암시했다. 신 부회장은 지난 10일 한국석유화학협회 신년회에서 "석화 산업은 수요 부진과 중국 자급률 급상승에도 계속된 설비 확충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며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한계 사업을 점차 축소해 과잉 설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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