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빈대 뿌리뽑기 나선 지자체…서울시·경기도 15억원 투입

이희승 기자 2023-11-10 17:57:28
빈대 유입 자체를 막을 방법 없다 방제용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살충제 '긴급 승인'...가정용은 제외
서울시 빈대 방역 담당자들이 9일 서울역에 있는 쪽방에서 빈대 주요 서식처인 침구류에 고온스팀기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이코노믹데일리] 찜질방·고시원·대중교통 등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이 빈대 출현으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정부와 지자체가 빈대 뿌리뽑기에 나섰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예산 총 15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정부 합동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6일까지 전국 17개 시도에 접수된 빈대 출몰 신고 건수는 30건이다. 이중 서울시에서 현장 확인된 건수는 23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난 2014년부터 올해까지 질병관리청에 9건이 접수된 것과 비교하면 최근 약 1~2달 사이 대폭 증가했다.

이외에도 지난달 13일부터 지난 6일까지 120다산콜센터에 접수된 빈대 관련 문의는 232건으로, 방역요청만 157건에 달했다. 

가장 큰 원인은 해외 유입으로 분석된다. 최근 프랑스·영국 등 유럽 국가에서 빈대 출몰이 잦은 가운데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나 유학생들에게서 옮겨오는 것이다. 

지난 8월 대구 계명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한 대학생이 빈대 피해를 호소했고, 해당 방은 영국 출신 유학생이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인천 서구의 한 찜질방에서도 빈대가 발견되는 등 시민들 사이에서 빈대 공포증이 확산하고 있다. 

빈대는 몸길이 1~7㎜의 작고 납작한 기생 곤충으로 야간에 활동하며 사람과 동물 피를 먹고 산다. 질병을 퍼뜨리지는 않지만 가려움증과 수면 부족을 유발한다. 가정 내에서 주로 발견되는 곳은 침대 매트리스, 문·마루 틈, 콘센트나 가구 등이다. 이곳에 알이나 배설물을 남겨 빈대 존재 여부를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빈대 유입 자체를 막을 방법은 현재 없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빈대는 검역물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람이나 화물이 국내로 들어올 때 빈대 유무를 검사하는 절차가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공공 차원에서는 철저히 위생을 점검하고 허가된 살충제로 소독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빈대는 고열에 약하므로 가정에서는 스팀청소기로 옷과 침구류를 지지고 진공청소기로 알이나 탈피 후 남은 껍질까지 제거하면 좋다”고 설명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9일 서울시청에서 보건의료·감염병 관련 전문가와 ‘서울시 빈대대책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빈대 제로(Zero) 도시 서울을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이날 한국방역협회와는 해충 방제·관리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서울시는 빈대 방제와 위생점검 등에 5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숙박시설과 목욕탕·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에는 위생관리 강화를 주문하고 이행 여부 확인 후 '빈대예방 실천시설' 스티커를 부착할 예정이다. 쪽방촌과 고시원 등 위생 취약시설에는 방제를 지원하고 있다. 

지하철의 경우 직물 소재 좌석에서 빈대 출몰 가능성이 큰 만큼 기지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노선 의자 상태를 수시로 점검한다. 서울교통공사는 연 9회 진행했던 기존 방역을 연 30회로 늘리고 직물 의자는 고온 스팀 청소기로 살균과 살충을 하고 있다. 

승강장·대합실·화장실 등에도 방역 약제를 분사하고 있으며 추후 직물 의자를 플라스틱 재질로 교체할 예정이다. 9호선과 우이신설선, 신림선 등도 정기방역 외에 특별방역을 진행 중이다. 

장애인콜택시와 외국인관광택시를 포함한 모든 택시도 소독제와 청소기 등을 활용해 차량 위생을 관리한다.

이 밖에도 서울시는 지난 8일부터 자체 누리집을 활용한 ‘빈대발생 신고센터’를 운영 중이다. 신고가 접수되면 자치구에서 현장 출동해 빈대 출현 여부를 확인하고 방제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해당 센터에서는 빈대 관련 교육 자료와 빈대 소독업체 명단, 관련 해외 소식을 함께 제공한다.

경기도에서는 빈대 대응 관련 사업에 예비비 약 10억원을 사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도내 31개 시군에 지원할 계획으로 집행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반면 인천시 예산 담당자는 현재 예비비 등 빈대 방제를 위해 따로 투입되거나 집행 예정인 비용은 없다고 전했다.

한편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은 빈대 방제용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디노테퓨란 살충제 제품 8개를 10일 긴급 승인했다. 빈대가 기존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에 내성을 보여 살충 효과가 떨어진다는 국내외 연구결과에 따른 것이다.

긴급 승인은 의료기기나 약품을 긴급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을 때 정부가 별도 검증이나 허가를 면제하고 한시적으로 제조·판매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7일 전문가들과 논의 후 빈대 확산 방지를 위한 추가 살충제 긴급 승인을 요청한 바 있다. 이후 9일 해당 제품 생산업체들과 제조·원료 물질 수급 등을 확인한 뒤 긴급 승인하기로 최종결정했다.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살충제는 국내에서 모기·파리·바퀴벌레 등 방제용으로 승인된 살충제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등록·승인돼 사용되고 있다. 환경부 측은 “인체와 환경에 안전하다는 사실이 검증됐다”며 “기존 살충제보다 빈대 내성에 대해 효과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다만 긴급 승인 살충제 8개 제품 모두 전문 방역업자가 사용하는 용도로만 승인됐다. 가정용 살충제는 이번 승인 대상에서 제외됐다. 실생활에서 보호장구 착용 없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 엄격하게 안전성을 검증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국립환경과학원에서는 해당 안전성 검증 등 후속 승인 절차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