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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가 살길이다⑨] 현대차그룹 '톱3' 비결…"가격·마케팅이 다가 아니네"

성상영 기자 2023-11-07 05:00:00
현대차그룹 2년 연속 글로벌 톱3 등극 10년간 인재 영입·R&D에 공격적 투자 '저렴한 브랜드' 선입견 깨고 '환골탈태'
경기 화성시 현대자동차·기아 남양연구소 전경[사진=현대차그룹]
[이코노믹데일리]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차량용 전기장치(전장) 사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전방 산업인 자동차 산업이 꾸준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어서다. 전동화 추세와 더불어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과 스마트 기기 수준으로 진화한 인포테인먼트 장치가 보편화되면서 전장 사업이 본격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흐름을 가장 잘 읽어낸 완성차 기업으로는 현대자동차그룹이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이 세계 경제를 덮친 상황에서도 최고 수준 매출과 영업이익, 글로벌 완성차 판매량 3위 등 진기록을 세우며 이를 증명했다. 자동차 산업에 진출한 지 반세기 남짓 만에 '톱(Top)3' 완성차 기업으로 끌어올린 원동력은 단연 연구개발(R&D)이다.

6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올해 3분기까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잇따라 낭보를 전해왔다. 지난 9월 미국에서 역대 월간 최다 판매를 한 데 이어 유럽에서 1~9월 누적 판매량 3위에 올랐다. 글로벌 통산으로도 현대차그룹은 1~3분기 약 548만대를 팔아 일본 도요타(826만대), 독일 폭스바겐그룹(671만대) 다음으로 판매량이 많았다. 이 추세대로면 지난해부터 올해 2년 연속 3위가 확실시 된다.

지난달 26일과 27일 현대차·기아 3분기 실적이 각각 발표되자 국내 산업계가 크게 술렁였다. 현대차는 영업이익 3조8218억원, 기아는 2조8651억원을 거뒀기 때문이다. 매출에서 영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인 영업이익률은 각각 9.3%, 11.2%에 이르렀다. 실적이 최고조에 도달한 지난 2분기에는 현대차 9.6%, 기아 12.2%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이 6~7% 수준인 점에 비춰 보면 경이로운 수치다. 도요타(10%)를 뺀 주요 완성차 기업은 8%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이 전성기를 맞은 데에는 고수익 전략이 주효했다는 해석이 나오지만, 업계에서는 이와는 별개로 현대차·기아 차량 성능과 품질이 꾸준히 개선된 점에 주목한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유럽·북미에서 스텔란티스와 폭스바겐, 도요타, 혼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강자와 경쟁하려면 상술이나 가격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현대차는 1976년 '포니'를 남미 에콰도르에 수출하며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 데뷔했다. 1986년 미국에 '포니 엑셀'을 처음 수출한 이후 아반떼(현지명 엘란트라), 쏘나타, 투싼, 싼타페 등 판매 차종을 늘려 갔다. 기아 역시 2000년대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뒤로 스포티지와 K5를 수출하고 현지 전용 모델 텔루라이드까지 내놓으며 북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
 
서울 서초구 현대차·기아 본사[사진=현대차그룹]
미국 진출 초기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현대차·기아를 보는 현지 시선은 '저렴한 브랜드'였다. 경쟁사와 비교해 품질이나 성능은 다소 뒤떨어지지만 싼 맛에 타는 차라는 인식이 강했다.

현대차·기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한 때는 2015년 무렵이다. 이때를 전후로 현대차그룹은 디자인·성능 관련 전문가를 대대적으로 영입했다. 루크 동커볼케 최고창조책임자(COO) 사장과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현 기술 고문)이 2015년 합류하고 2017년 파예즈 라만 차량아키텍처개발센터장(현재 퇴사), 2018년 토마스 쉬미에라 고객경험본부장(현재 퇴사)이 R&D 부서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훨씬 앞서 2006년 기아 디자인 총괄로 입사한 피터 슈라이어 현대차그룹 디자인 고문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른바 '외인(外人)부대'로 R&D 진용을 새롭게 짠 현대차그룹은 볼륨 차종인 소형·준중형 세단과 SUV에 신규 디자인과 플랫폼, 파워트레인(구동계)을 적용해 내놨다. 6세대 아반떼와 2세대 K3, 1세대 코나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나온 8세대 쏘나타와 3세대 K5 등 중형차도 외인부대의 손을 거쳤다.

당시 출시된 현대차·기아 차량은 차체 무게중심이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골격·하체 부품 설계가 바뀌면서 주행 안정성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201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출범한 현대차 고성능 브랜드 'N'은 △i30 N, △아반떼 N △코나 N △아이오닉5 N 등을 선보이며 고성능차 본고장인 유럽에서 극찬을 받기도 했다.

해마다 늘어난 R&D 투자도 톱3 현대차그룹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현대차·기아 합산 R&D 비용은 2015년 3조7000억원에서 2019년 4조8000억원, 지난해에는 5조5000억원이었다. 부품 모듈과 엔진, 소재 등을 공급하는 다른 계열사까지 포함하면 현대차그룹의 한 해 R&D 비용은 8조원에 육박한다. 최근에는 자동차에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조명, 음향 등 감성적 요소가 중요해지면서 내장 디자인과 소프트웨어에 투자를 늘리는 모습이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지난 10여년 동안 현대차그룹은 그야말로 환골탈태했다"며 "공격적인 인재 영입과 투자가 이뤄진 데다 엔지니어를 비롯한 R&D 관련 직원들이 만들고 싶은 차를 만들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된 점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