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전수조사에 나서 찾아낸 출생신고 미신고 아이들이 7일 기준 무려 780건. 이 중 이미 27명의 아이가 숨진 것이 확인됐고, 이 가운데 11건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가 포착돼 추가 수사가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그림자 아기 사건과 그 비극적 결말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다른 요인은 미혼, 불륜 등 '법적 음지'에서 출생했다는 점이다. 수원냉장고 사건의 경우 이미 자녀를 여럿 둔 가정에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두 아기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숨이 끊겼고, 다운증후군 유전자를 가졌단 이유로 생후 하루 만에 친부와 외조모 손에 죽임을 당해 땅에 묻힌 아이도 있었다. 이 작고 힘 없는 아기들이 이 세상을 떠난 지 몇 년 뒤에야 참혹한 진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물론 외국인 아기여서 우리나라 행정 당국에 신고가 될 수 없는 경우도 있었고 병원에서 공식 사망진단을 내린 사례들도 있지만 아직 대다수 그림자 아기들은 그 행방부터 묘연하고, 죽은 아기들은 병사인지 타살인지 불분명하다. 우리 사회는 출산율 저하를 우려하면서도 저 무력하고 무해한 갓난 아기들이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동안 그들을 지켜줄 최소한의 안전망은 어디에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영아 살해·유기 사건에서 드러나고 있는 이들의 비극은 참으로 처참하다. 어떤 아기는 일부 유골이나마 찾아내 장례라도 제대로 치를 수 있게 됐지만 7일 광주경찰청에 체포된 생모 경우처럼 생후 6일 된 여아를 방치하다 숨지자 시신을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담아 유기하는 바람에 5년이 지난 지금은 시신도 찾을 수 없는 지경이다.
얼마 전 내 사는 동네에서는 골목에서 자주 보던 생후 3~4개월쯤 된 길고양이가 갑자기 사망하자 이웃들이 함께 작은 종이 상자와 종량제 봉투를 가져와 명복을 빌며 먼저 종이에 곱게 싼 뒤 작은 상자에 넣어 그 상자 하나만 종량제 봉투에 담아 간략하게 장사를 지낸 적이 있다.
하물며 죽은 길고양이도 다음에는 좀더 귀한 대접받는 집고양이로 태어나라며 죽은 동물은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장사를 지냈는데, 사람의 아기가 종량제 봉투라니. 어린 고양이 시신 상자를 담았던 종량제 봉투가 눈에 어른거리며 대체 사람 아기를 어떻게 종량제 봉투에 넣을 수 있었는지, 그 이후를 생각하면 가슴에 돌을 얹은 듯하다.
늦었지만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 '출생통보제'가 도입됐다.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법안 공포일로부터 일년 후인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된다. 출생통보제란 의료기관장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아이 출생 후 14일 이내 출생 사실을 통보하며, 심평원은 이를 받자마자 지방자치단체에 통고, 지자체가 출생신고 여부를 확인하는 제도다. 이때에도 출생신고가 돼 있지 않으면 지자체가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하는 내용이다.
원래 우리 사회는 '업둥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버려진 아이조차 거둬 기르던 훌륭한 전통이 있었다. 우리집에 온 아기는 어떤 사연이 있든 내치지 않고 길렀던 아름다운 전통이다. 세상에 어떤 아기도 귀하지 않은 아기는 없다. 누가 낳았든 어떤 사정이 있든, 우리 모두가 함께 길러야 하는 소중한 생명들이다. 아기 없는 사회에 미래가 있는가. 아기가 없으면 우리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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