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한국문화재재단, '기억과 기록으로 다시 짓는 한국의집' 출간

박명섭 기자 2023-07-26 10:48:22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지켜본 '한국의집'터에 대한 역사와 숨겨진 이야기 친일 잔재 '문향각(聞香閣)'에서 유래한 '문향루(聞香樓)', '우금헌(友琴軒)'으로 변경…현판 교체
'기억과 기록으로 다시 짓는 한국의집' [사진=한국문화재재단]
[이코노믹데일리] 조선 전기 사육신 중 하나인 박팽년의 집터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관저, 해방 후 미8군사령관 관저로 사용된 후 '한국의집'이 되기까지 역사의 질곡을 함께하며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지켜본 '한국의집'에 대한 책이 나왔다. 

한국문화재재단은 '한국의집'의 역사와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기억과 기록으로 다시 짓는 한국의집'을 출간했다고 26일 밝혔다.

'한국의집'은 조선 전기 문신이자 사육신 중 한 명인 박팽년의 집터 위에 세워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2인자인 엔도 류사쿠(遠藤柳作) 정무총감의 관저로 사용된 공간이자 해방의 소식을 처음 맞이한 뜻깊은 공간이다. 1945년 8월 15일 엔도 정무총감은 여운형 선생을 관저로 불러 치안과 질서 유지를 담보로 협상을 진행했다. '한국의집'은 해방의 역사를 내딛는 첫 번째 장소가 됐다.

해방 후 '한국의집'은 주한미군정청이 관리하며 숙소 겸 미군의 위락시설로 활용했고, 이 무렵부터 '코리아 하우스'로 불렸다. 관저로 사용한 미8군사령관 중에는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James A. Van Fleet)이 있다. 밴 플리트 장군은 재임 중 한국의 육군사관학교를 설립하고 전쟁 후에는 '코리아 소사이어티(The Korea Society)'를 설립하는 등 한국 재건과 문화 사업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한국의집'은 6·25전쟁 후 영빈관과 한국 문화 체험 시설로 활용되다 1955년 공보처가 대통령 직속 공보실로 변경되며 1957년 대대적인 개보수를 진행했다. 이때부터 '한국의집'은 한국의 전통 생활과 문화를 소개하고 즐길 수 있는 장소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당시 건축물은 한국 전통 양식과 서양식, 일본식이 혼합된 형태였으며, 1978년 '우금헌(구 문향루)'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한국 전통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1981년 2월 재개관해 지금의 '한국의집'이 됐다.

1981년 한국의집 재개관 시 당시 최고의 서예가인 일중 김충현, 원곡 김기승, 여초 김응현, 청남 오제봉, 청명 임창순 선생이 제작한 현판과 주련은 지금도 한국의집을 지키고 있다. 책은 마지막 부분에 현판과 주련의 해설을 포함해 당시의 글씨와 의미를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제작 과정에서 ‘한국의집’의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건물인 '문향루(聞香樓, 현 우금헌)' 명칭의 유래와 그 의미를 발견했다. 저자로 참여한 오일환 아르고인문사회연구소 대표연구위원은 '문향루'의 원래 이름은 일제강점기 정무총감 관저 내에 있던 '문향각(聞香閣)'에서 유래한 것이며 '경성일보' 1934년 12월 1일자와 미즈노 렌타로(水野錬太郎)의 회고록을 통해 '문향각'은 이완용이 당시 정무총감(1919~1922)인 미즈노 렌타로를 찬미하기 위해 만든 명칭이란 것을 발견했다. 미즈노 렌타로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주범이기도 하다. 
 
(왼쪽부터)한국문화재재단은 친일 잔재 문향루(聞香樓)의 명칭을 우금헌(友琴軒)으로 변경하고 현판을 교체했다. [사진=한국문화재재단]
재단은 친일 잔재 자료를 확인한 후 '문향루'의 명칭을 '우금헌(友琴軒)'으로 새롭게 정하고 현판을 바꿔 걸었다. 우금헌은 거문고를 벗하는 집이란 뜻으로, 박팽년의 호인 '취금헌(醉琴軒)'에서 '거문고(琴)'를 남기고 이를 벗한다는 '우友'를 더해 원래 집터의 주인이자 목숨으로 지조와 절개를 지켜 낸 박팽년의 뜻을 기림으로써 오욕의 역사를 정갈하게 씻어낸다는 의미로 정했다.

한편 한국문화재재단은 1980년 '한국의집'의 위탁관리를 맡으며 '한국문화재보호협회'로 시작했다.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36길에 위치한 '한국의집'은 재개관 후 지금까지 궁중음식과 전통혼례 등의 계발‧보급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존의 '한국의집'이 외국인 전용 공간으로 전통문화 홍보를 위해 운영되었다면, 1981년 2월 재개관 이후에는 모두를 위한 '한국의집'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국의집'은 궁중음식을 기반으로 한 전통음식의 보급과 함께 전통혼례문화의 대중화와 보존을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또한 민속극장은 국악계의 사관학교이자 국악인들의 사랑방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다. 당대 최고의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홍금산, 정재만, 최현, 박병천, 송범, 국수호 등이 한국의집예술단 단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의집 민속극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상설공연을 중단하기 전까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매일 전통예술공연이 펼쳐진 장소였다.

'한국의집'은 지금도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고자 가정간편식(HMR) 상품 '효종갱', '설리갱' 등을 개발해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으며, 디저트와 인증샷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세대의 트렌드에 맞춰 궁중 다과 브랜드 '고호재'를 새롭게 출시했다. '한국의집 민속극장'과 예술단은 코로나19 이후 상설공연을 중단하고 외부 공연을 확대해 나가며 다양한 곳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책장을 넘기며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근현대 역사를 만나볼 수 있는 있는  '기억과 기록으로 다시 짓는 한국의집'은 오일환, 이연식, 박진홍, 김태년, 정희정, 조미숙, 이치헌이 저자로 참여했으며 한국의집 문화상품관 카페 '사랑'에서 구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