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민주노총 '실력 행사'에 마비된 서울 도심…'민주'는 없었다

고은서 기자 2023-05-31 19:13:37
오후 내내 서대문·세종대로·을지로 점거 "노동개악 중단" 앞세우곤 "윤석열 퇴진" '무법천지' 여전…위협적으로 취재 막기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31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고은서 기자]

[이코노믹데일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실력 행사에 서울 도심이 마비됐다. 윤석열 정부 퇴진을 주장하며 대규모 도심 집회를 연 민주노총은 31일 서울에서만 조합원 수만명을 동원해 세력을 과시했다. 우려했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4시 서울 세종대로 동화면세점 인근 4~5개 차로에 집결해 경고 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앞서 오후 2시께 서대문구 경찰청과 중구 을지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는 각각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과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집회가 진행됐다. 서울 사대문 안이 온통 노조 집회로 몸살을 앓은 셈이다.

이날 서울뿐 아니라 전국 14개 지역에서 이어진 집회를 합치면 조합원 총 3만50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이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 것은 지난 16~17일 1박 2일간 건설노조가 불법 노숙 집회를 개최한 지 2주 만이다.

이들은 △고(故)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지부 지대장 사망 사건에 대한 정부의 사과 △주 69시간제 도입 시도 중단 △최저임금 인상 등을 주요 요구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윤 대통령 퇴진이 전부였다. 노동 현안을 문제 삼아 사실상 정치색 짙은 집단행동을 벌인 것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집회 시작에 앞서 "민주주의 나라에서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노동자 목소리를 보장하는 것인데 윤 정부는 모든 집회를 금지하겠다고 한다"며 "이는 군부 독재,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전날(30일) 보도자료를 통해 "노동조합 회계자료 제출을 시작으로 주 69시간제로 일컫는 노동시간 개악을 시도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선제적인 경고 파업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구호는 '윤석열 퇴진'이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31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 도로를 점거하고 '노조 탄압 중단'을 외치는 모습[사진=고은서 기자]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은 현 시국에 대해 "범죄와의 전쟁이 노동조합과의 전쟁으로 둔갑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노동자를 분신으로 죽음으로 내몰고 야당을 표적으로 탄압하며 숨 쉴 자유조차 없는 세상"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은 민주주의와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외쳤지만 정작 집회에서는 언론의 자유도, 민주주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일부 참석자들은 언론의 취재를 강하게 거부하며 한 종합편성 방송사 기자와 몸싸움을 벌이거나 기자가 건넨 명함을 보란 듯이 땅바닥에 집어 던지기도 했다. 집회 현장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휴대전화를 들자 위협적인 태도로 "나가라"고 소리치는 참가자도 있었다.

집회 사회자는 방송을 통해 특정 매체와 경제신문을 거론하며 "취재를 금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민주노총을 우호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사만 취재를 허용하고 비판적인 보도는 모두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앞선 금속노조 위원장의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는 발언을 무색케 했다. 지난 건설노조 집회에서 논란을 빚은 금연구역 흡연과 쓰레기 무단 투기 등은 여전했다.

몇몇 참가자는 경찰과 마찰을 빚으며 아찔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경찰이 질서 유지를 위해 설치한 철제 펜스(질서유지선)를 밀었고 경찰 병력이 이를 제지하며 충돌이 일어났다. 현장을 지나는 한 시민은 "이러다 누구 다치는 거 아니냐"며 우려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날 집회 신고를 오후 5시까지만 받았지만 민주노총은 예정된 시각을 넘겼다. 경찰 측은 민주노총의 불법 행위에 대비해 8개 기동단 80개 중대(5000여명)를 투입하고 진압용 장비인 캡사이신(최루액) 분사기 등을 준비했다. 경찰이 경고 방송을 반복한 끝에 집회는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