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치킨게임에서 끝내 승리하는 분위기다. 메모리 감산 발표 직후 반등한 D램 가격은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의 위력을 보여줬다. 타이밍은 절묘했고 그 사이 경쟁사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개인용 컴퓨터(PC)에 주로 사용되는 D램 가격이 반등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메모리 불황 종료 시기가 앞당겨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메모리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가 공개한 DDR4 16기가비트(Gb) 2666 제품 현물 평균 가격은 11일 기준 3.235달러였다. 이는 전날(10일) 3.21달러보다 0.025달러 상승한 금액이다.
D램 가격이 오른 것은 13개월 만이지만 여전히 1년 전인 3월 7달러선을 유지한 것과 비교하면 절반이 채 안 되는 수준이다. 인플레이션을 동반한 경기 침체로 PC 수요가 뚝 떨어진 결과다. D램 가격 상승이 본격화하려면 수요 회복이 우선이다.
DDR4 16Gb 제품을 제외하면 그래픽카드에 쓰이는 GDDR5 8기가바이트(GB)나 저장장치인 SSD 가격은 여전히 약세다. 일부 품목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메모리 업황 회복을 기대하기는 무리일 수 있다는 얘기다. 본격적인 반등 시점은 지금보다 빨라야 3~4개월 뒤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메모리 감산 소식은 시장에 기대감을 줬다. 수요는 여전히 부진하지만 메모리 생산량 감소로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이 더 추락할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전 세계 D램 생산량 95%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이 차지하는데 이들 모두 감산에 나서면 가격 반등 여지가 생긴다.
무엇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이 세 업체 중에서도 가장 높다. 대만 트렌드포스는 지난해 4분기(10~12월) 전 세계 D램 매출을 122억8100만 달러로 집계했는데 이 가운데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45.1%(55억4000만 달러)에 이른다. 직전 3분기(7~9월) 40.7%보다 4.4%포인트(P) 상승한 수치다.
점유율은 곧 시장지배력을 의미한다. 제품 가격을 어느 정도 좌우할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감산을 발표하자 D램 제품 가격이 소폭 반등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 가지 관심사는 삼성전자가 왜 하필 지금 감산을 발표했는지다. 삼성전자는 지난 7일 올해 1분기(1~3월) 잠정 실적 발표와 함께 낸 설명자료를 통해 "특정 메모리 제품은 향후 수요 변동에 대응 가능한 물량을 확보했다는 판단"이라며 "공급성이 확보된 제품 중심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머지 않은 시점에 메모리 수요가 회복될 것이고 그에 맞춰 재고를 준비해 뒀다는 얘기다. 뒤늦게 감산을 결정한 나름의 명분을 내세웠을 수 있지만 생산량을 줄여도 될 만큼 경쟁업체를 상대로 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했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과거 삼성전자는 메모리 시장이 중요한 변곡점을 맞을 때마다 치킨게임(출혈 경쟁)을 벌여 승자가 됐다. 이번에도 전사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서지 않는 지점까지 버티면서 내년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수요 증가, 재고 소진에 대응할 '총알'을 비축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삼성전자는 이를 토대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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