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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돈 잔치' 금융사에 뿔난 민심…채용 카드 꺼낸 尹정부, 졸속 행정탓 '희망 고문'

신병근·박이삭·이석훈 기자 2023-03-02 00:00:00
4700명 선발 계획…본지 전수조사, 실제 신입채용 50%대 당국·협회 압박에 없던 계획 '뚝딱'…기채용도 신규 둔갑 '투명한 정보' 헛구호…금융당국 "혼란 소지 개선할 것"

김소영(오른쪽)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권 청년 일자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이코노믹데일리] 역대급 이익을 거둔 금융회사를 겨냥한 윤석열 대통령의 '돈 잔치' 직격 파장이 일면서 금융당국이 채용 카드를 꺼냈으나 졸속 추진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자 장사에 성과급 잔치를 벌인 금융사가 여론 뭇매를 맞자 당국이 이례적인 채용 계획을 하달한 정황이 포착됐다. 관치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업권별 채용 규모도 주먹구구식으로 부풀려 치적쌓기용 행정이란 지적이 쏟아진다.

◆없었던 채용 계획 1주일 만에…어긋난 민심 달래기

1일 취재 결과 6대 금융협회(은행연합회·금융투자협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여신금융협회·저축은행중앙회)가 일제히 밝힌 올해 상반기 채용 계획은 단 일주일여 만에 취합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본지가 전수 조사한 186개 금융사의 올 상반기 채용 규모는 각 협회가 발표한 수치 대비 현격히 작았다. 신규 채용규모 상당수가 '허수(虛數)'로 밝혀지면서다. 국민들에게 알려진 채용 규모는 총 4719명인 반면, 실제 '신입' 형태로 뽑을 신규 채용 인원수는 발표치의 56% 수준인 2654명에 그쳤다.

이 같은 격차가 발생한 원인은 협회별 조사 당시 금융사가 이미 뽑은 직원은 물론 비정규직과 경력직 등을 모두 포함한 탓이다. 가장 규모가 큰 은행연합회는 전년에 비해 채용 규모가 늘었다며 대대적 홍보에 나섰으나 발표 시기를 기점으로 실제 채용할 규모는 전망치 대비 40% 수준인 것으로 분석됐다. 10명을 뽑겠다면서 신입 직원 4명만 추가 채용할 예정인 셈이다.

결국 제대로 된 검토 없이 뿔난 민심 달래기에 혈안 된 행정이 촌극을 빚었다. 각 협회는 채용 계획을 지난달 20일 오후 1시 30분에 동시 발표했다. 이에 앞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주재로 같은 날 오전 11시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권 청년 일자리 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가 열리기 전부터 협회들은 회원사별 채용 인원수를 사전 조사했는데, 복수의 협회 관계자들은 금융위발 관련 공문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따라 각 협회도 모든 회원사에 관련 정보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민간 금융사의 채용 계획을 한 자릿수까지 취합한 것도 최근 전례가 없을뿐더러 그 시발점이 금융당국이란 점에서 전형적인 관치 논란을 키운 모양새다. 더욱이 김 부위원장이 참석한 간담회 시기에 꿰맞춘 행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윤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은행은 군대보다 중요하다", "은행 과점의 폐해가 크다"고 비판 수위를 높인 만큼 금융사는 '공공의 적'으로 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대규모 금융사 채용계획이 발표되자 이목이 쏠렸다.

당국 압박에 각 협회가 무리한 채용을 채근했다는 전언도 잇따른다. 급기야 빠듯한 제출 기한에 쫓겨 없던 계획까지 부랴부랴 세워야 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통 00명으로 채용 규모를 게시하는데 한 자릿수까지 지정해 계획을 밝힌 적은 없었다"며 "은행권 이슈가 계속 터져 나오니 사회 공헌 의미에서 일자리도 많이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기식 하는 것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협회가 과거에 채용 계획을 문의하면 '미정'이라고 줄곧 답했는데 이번만 유독 구체적 채용 계획을 꼭 적어서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전했다. 

금융위는 이번 채용 논란과 관련해 실무급에서 처음 자체 추진, 관치가 아님을 강조했다. 금융위 측은 "당국이 직접 채용 인원을 발표한 건 아니"라며 "각 협회 기준이 다른 것을 일관되게 통일할 수도 없는 문제가 있었고, 앞으로 혼란 소지가 있다면 개선하겠다"고 해명했다.  
 

금융당국 주관으로 금융협회들이 일제히 밝힌 올해 상반기 채용계획 인원수가 엉망으로 집계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작년 8월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최된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 현장 [사진=금융위원회]

◆기입사자 '신규' 둔갑, 비정규직 포함…엉터리 집계 수두룩

채용 인원은 엉터리 집계투성이로 나타났다. 이미 입사한 인원을 마치 새로 뽑을 듯 신규 계획에 포함한 한편, 정규직 '신입'이 아닌 경력직과 비정규직까지 모두 합산한 게 주된 요인이다. 회사별 채용 기준도 '대졸 신입', '고졸·대졸' 및 '신입·경력' 혼합 형태 등 제각각인 데다 이런 구분조차 명확지 않아 구직자 혼란을 자초했다.

일례로 은행연합회는 '2023년 상반기 국내은행 채용계획' 중 NH농협은행이 올 2월과 5월에 걸쳐 500명을 신규 채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농협은행은 일찌감치 작년 말 공개채용 절차를 밟아 480명 신입 행원을 모두 선발한 상태였다. 나머지 20명도 경력직으로 뽑을 내부 계획이 파악됐다.

Sh수협은행이 지난달 채용 완료한 85명도 버젓이 상반기 채용 계획에 포함됐다. 은행연합회는 "전년 상반기 대비 48% 증가한 2288명 이상을 신규 채용할 전망"이라며 앞으로 새롭게 채용할 뜻인 것처럼 알렸다.

상당수 금융사는 채용 규모를 확정하지 않았는데도 당국과 협회 눈총에 못 이겨 '어림수' 보고했다고 실토했다. 협회가 취합한 채용 인원·형태는 현재까지 신입·경력 분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증권·금투업계 사정도 마찬가지다. 대형 증권사 중 한국투자증권(120명)과 미래에셋증권(90명) 등은 채용 시기가 '잠정'으로 표기돼 불확실하고 KB증권(80명)과 키움증권(70명) 등은 경력직을 다수 포함해 채용 규모를 산정했다.

키움증권의 경우 세부 계획을 마련하지 못했지만 금투협회 요청에 따라 최근 3개년 평균 채용 인원을 산출한 실정이다.  

삼성증권(95명) 역시 신입 사원 기준으로 인원수를 기재했으나 이마저 추정치에 불과하며 내부적으로는 "규모 미정"이 공식 입장으로 전해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대졸 신입 기준으로 취합한 곳이 있는 반면 경력직을 포함한 회사들도 많다"며 "협회에서 취합할 때 기준을 잘못 전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금투업계 작년 순이익 1위에 오른 메리츠증권의 경우 수시채용 방식의 신입·경력직을 선발해 왔지만 이번에는 등 떠밀기식 협회 요청에 대략적인 채용 규모(3명)와 시기(3월)를 적어냈다.

제2금융권의 무분별한 취합 실태도 드러났다. 여신금융협회가 "경력직을 제외한 신입 사원수만 취합했다"고 전한 것과 달리 우리카드(16명)는 작년 하반기 중 채용 절차를 밟아 이미 근무 중인 인원을 채용 계획에 포함했다.

신한카드(41명)와 DB생명(15명) 계획에도 작년에 뽑아 지난 1월 중 발령받거나 기입사한 직원수가 중복됐다. DB손보(87명)는 오는 3~4월 중 채용을 진행할 예정이나 손보협회가 발표한 자료에는 1~2월 채용할 것으로 기재된 오류도 보였다. 

더욱이 청년들 일자리 불안감을 경감할 사업을 추진한다는 금융위 설명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점도 지목됐다. 금융위가 협회별 '정규직 신규' 기준 채용 계획을 요구한 것과 배치되는 비정규직 모집이 취업포털 사이트에 게시되면서다.

신규 채용 시기를 2월로 명시한 푸본현대생명(12명)의 경우 취업포털에 띄운 공고에 각 분야 경력직과 계약직을 동시모집한 게 대표적이다. 복수의 금융협회 관계자는 "회원사 각각의 채용 완료 여부를 비롯해 입사 시기까지는 파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표 참조
 

▶표 = 공식발표 - 실제 채용인원 간 불일치 현황

◆'신입' 고대한 취준생 좌절 "상세 직무·경력비율 정보 절실"
   
"양질의 일자리인 금융권 청년 일자리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한다"며 "채용시기와 인원에 대한 투명한 안내 등으로 청년 구직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크게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 김 부위원장 강조점은 헛구호가 됐다. 

기대를 모은 채용 계획이 엉망으로 조사된 소식을 접한 취업준비생들은 희망고문만 이어진다고 토로한다. 대학 재학 시절 야간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은행권 취업을 준비한 A(26·여)씨는 "은행연합회가 공신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대체 무슨 정보를 믿어야 하냐"며 "취업 시험부터 채용 정보까지 금융 고용시장에는 불확실한 정보뿐"이라고 말했다. 

1년 2개월째 금융권 입사 시험만 몰두한 취준생 B(28)씨도 올해 지원 기회나 생길지 노심초사다. 그는 "초짜들은 경력직 공채에 지원할 수 없고 디지털 직군을 선호하는 금융권 기류상 일반 사무직을 준비하는 대부분 취준생은 원서조차 넣을 수 없다"며 "부풀리기 거짓 채용이 아닌 구체적인 직무별, 경력직 비율 등 상세한 채용 정보가 절실하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 쓴소리도 이어진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정된 채용 인원 수를 발표해야지 지금처럼 기채용자를 포함한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고 했고, 강형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는 '투명한 정보 공개'라는 국가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에게 큰 실망감을 불러일으킬 중대 문제"라고 일갈했다.

당국은 각 협회가 상이한 채용 기준 등을 제시한 것에 관해 자의적 판단에 따랐다는 의미의 설명만 되풀이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협회 측에 정규 신규 기준으로 가급적 자세하게 써달라고 했다"면서도 "그것과 다르게 발표한 협회는 각 협회 쪽에서 결정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채용인원·시기) 변동이 가능하다는 점이 당국 자료에 있고 협회에서도 변동 가능하다는 점을 명시한 걸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