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어느 때보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중 기업인 간 경제협력이 절실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8월 24일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비즈니스 포럼'에서 한국과 중국 간 경제협력을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최 회장이 남긴 메시지는 무게가 남달랐다.
수교 30주년을 맞이한 한·중 관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중국이 'G2'로 부상한 이후 미국은 중국을 향해 한껏 날을 세우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이 추진 중인 반도체 동맹 '칩(CHIP)4'와 최근 발효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미·중 양국 가운데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의 움직임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미국에서 전기차를 팔려면 중국산 배터리 또는 중국산 광물을 사용한 배터리를 배제해야 하고, 미국 반도체 공급망에 편입되려면 중국에 신규 투자를 하지 못한다. 당장은 전기차·배터리·반도체가 규제 대상에 올랐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또 어떤 산업에 칼끝을 겨눌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SK, 중국에서 발 뺀다?
SK그룹은 석유화학부터 배터리,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폭넓게 진출했다. 중국 내 지주회사인 SK차이나를 필두로 SK이노베이션과 SK온,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활발히 사업을 벌이고 있다.
SK는 중국 내 또 다른 SK를 만들겠다는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 전략을 추진하며 중국에 유난히 공을 들였다. 이는 고(故) 최종현 선대 회장 때부터 최태원 회장까지 2대에 걸친 애정이었다. 최태원 회장은 지금도 중국에 상당한 인맥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였을까. 2017년 이른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한·중 관계가 냉각되며 국내 기업이 타격을 입는 와중에도 SK는 비교적 무난히 파고를 넘었다. 당시 SK종합화학(현재 SK지오센트릭)은 중국 상하이에 TS&D(기술지원 개발) 센터를 설립하며 현지화에 박차를 가했다. SK하이닉스는 현지 D램 수요를 싹쓸이했다.
그런 SK에도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됐다. 지난해 SK차이나가 베이징 SK타워를 매각한 데 이어 중국 렌터카 사업에서 철수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를 두고 SK가 중국에서 발을 빼려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렌터카 사업 매각이 사실로 드러나긴 했지만 이는 사업 실적이 좋지 못한 탓이었다. SK는 지난 30년간 여러 분야에 걸쳐 중국 사업을 해온 만큼 옥석을 가려내는 과정도 필요했다. SK텔레콤이 2006년 차이나유니콤 지분을 사들였다가 3년 만에 매각한 것도 이러한 과정 중 하나였다.
◆SK '차이나 인사이더'의 꽃 '중한석화'
석유화학·배터리·반도체는 '차이나 인사이더'의 3대 핵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중에서도 SK지오센트릭과 중국석유화공총공사(SINOPEC·시노펙)가 합작한 '중한석화'는 한·중 수교 30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중한석화는 SK지오센트릭이 지분 35%, 시노펙이 65%를 각각 투자해 2013년 설립한 회사다. 총 투자 규모만 3조3000억원에 이르며 '한·중 수교 이후 최대 합작 프로젝트'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 회사는 2014년부터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에틸렌 생산 공장을 가동 중이다.
중한석화 설립이 추진된 이후 생산을 시작하기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최태원 회장은 2006년 왕톈푸 당시 시노펙 총경리와 마주 앉았다. 왕 총경리가 "에틸렌을 생산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고 최 회장은 "SK가 할 수 있다"고 답했다.
논의는 빠르게 진행돼 공장을 착공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상황이 악화하고 중국 정부가 합작사업에 의문을 표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최태원 회장은 "SK는 유공 시절부터 충분한 기술력을 축적했다"며 중국 정부를 설득했다. 2013년 들어 분위기가 바뀌더니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국무원 승인과 공상국 등록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중한석화는 공장 가동 첫해부터 영업이익을 내더니 흑자 규모를 해마다 늘렸다. 이 자금은 설비를 확장하는 데 다시 쓰였고 연간 에틸렌 생산 능력이 320만톤(t)으로 증가했다. 2019년에는 우한석화에서 정유 부문을 인수하며 몸집을 더욱 키웠다. 중한석화는 현재 중국 내 2위 NCC(나프타 분해) 업체로 발돋움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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