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동방] 공매도 재개의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오던 금융당국이 사실상 정치권과 개인투자자들의 여론에 휩쓸려 공매도 금지 조치를 연장하면서 ‘포퓰리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자본시장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금융당국이 외부 여론에 휘둘려 인기 위주의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의 공매도 재개 연기 발표 직후, 글로벌 자산시장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4일 “한국이 전세계 최장 기간 공매도를 금지하면서 주식시장 랠리를 인위적으로 지지해 폭락할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펀드매니저들과 트레이더들은 한국의 공매도 금지에 의한 인위적 주가 지지 상황이 결국 역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며 “또 리스크 헤지(Hedge·위험 회피) 수단을 잃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철수해 주가가 급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공매도 재개를 권고했다. 안드레아스 바워 IMF 한국미션단장은 지난달 ‘2021년 IMF-한국 연례협의 결과’ 브리핑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 금융시장이 많이 안정돼 보이고 경제도 회복하는 측면이 있다”며 “공매도 재개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금융당국이 공매도 금지 조치를 6개월 연장한 뒤 IMF가 우려를 표명한 데 이어 이번에는 공매도 재개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각종 온라인커뮤니티를 활용해 주식대여 해지 방법을 공유하는 등 공매도 재개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달 초 국내 게임스톱 운동을 주도했던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에서는 공식적으로 주식대여 해지 운동에 동참하지 않았지만, 다수 회원을 중심으로 동참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주식대여는 주식을 필요로 하는 차입자에게 내가 보유한 주식을 일정기간 빌려주고 수수료(연 0.1~5%)를 받는 서비스이다. 국내의 경우 차입공매도만 허용되기 때문에, 외국인과 기관은 시장조성자인 증권사를 통해 일정기간 수수료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주식을 가진 일반투자자와 다른 기관이 보유한 주식을 빌려 공매도를 하고 있다. 주식 대여 계좌를 줄여 공매도를 어렵게 만들겠다는 움직임인 셈이다.
개인투자자들의 반대 여론에 정치권에서도 지속적으로 공매도 재개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제도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불법 공매도 적발 시스템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며 공매도 재개를 반대했다.
실제 금융권 일각에서는 정치권의 공매도 재연기가 4월7일로 예정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를 고려한 처사로 보고 있다. 두 시장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개인투자자들의 표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이 금융당국을 압박해 공매도 재개를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 1월 담당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를 통해 “공매도 금지 조치는 3월15일 종료될 예정”이라고 못 박았다. 이후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월 중 결정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슬그머니 말을 바꾸었고, 결국 5월2일까지 공매도 금지 조치를 연장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공매도가 여러 순기능이 분명 존재함에도 개인투자자들이 격렬히 반대하는 것은 불법 공매도를 막을 수 있는 제도가 미비된 탓에 부정적 관점이 부각됐기 때문이다”며 “감독 강화와 동시에 무차입 공매도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제도 개선이 먼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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