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오는 13일 3000억원 규모 공모 회사채 발행를 위한 수요예측을 실시한다. 트랜치(tranche)는 3년물(1500억원)·5년물(900억원)·10년물(600억원)으로 구성됐다.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5000억원으로 증액발행한다.
희망금리밴드는 각각 개별민평금리 대비 –0.3%~+0.3%포인트를 가산해 제시했으며 조달된 자금은 만기가 돌아오는 채무 상환에 쓰인다. 주관업무는 신한금융투자와 SK증권이 공동으로 맡았다.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해 말 SK이노베이션 신용등급을 AA+에서 AA0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한국기업평가는 AA+를 유지하고 있지만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부여하고 있어 등급 스플릿은 의미가 없는 상황이다. 한기평이 제시한 등급하향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는 점과 지난해 적자전환 등으로 사실상 AA0로 평가된다.
등급 하향과 실적 부진에도 우량채 면모는 충분히 과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공모채 시장을 노크한 SK텔레콤과 GSS는 시장 수요가 차고 넘쳤다. 풍부한 유동성과 연초 기관투자자들의 캐리(이자수익)를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 분주한 탓이다.
다만 얼마나 많은 수요가 몰릴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SK이노베이션 주가는 배터리 성장 기대감에 힘입어 고공행진하고 있다. 지난해 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0(코로나19) 사태 이후 현재까지 무려 5배 넘게 상승했다.
반면, 성장 기대감보다는 수익안정성에 집중하는 채권투자자 입장에서 주가 상승은 큰 의미가 없다. 배터리 부문 성장에 따른 실적 개선이 기대되지만 대규모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차입 등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는 부담이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의 연결기준 순차입금은 지난 2017년 1조3000억원에서 2019년 말 7조1000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SK이노베이션은 100% 완전자회사인 SK IET(디스플레이, 배터리 부품) 상장을 준비 중이다. 기업공개(IPO)에 성공한다면 재무부담을 축소하는 데 일조할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 주력 사업인 정유, 화학, 전기차 배터리 부문 설비투자를 통한 외형 유지와 성장을 위해서도 필수다.
과거 SK루브리컨츠가 세 번 상장 시도 끝에 무산됐다는 점에서 SK IET의 성공적인 상장은 더욱 절실해진다. SK루브리컨츠 상장이 무산된 가장 큰 원인으로는 가격이 꼽힌다. SK그룹이 다소 공격적 밸류를 적용하면서 시장 공감대를 충분히 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다.
IB관계자는 “SK루브리컨츠 상장 당시 자동차 산업은 기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옮겨가던 시기였다”며 “전기차도 윤활유가 필요하지만 내연기관과는 일부 다른 측면이 있고 해당 포트폴리오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던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일부 지분 매각으로 선회했으나 이미 시장에서 여러 번 거론된 매물인 탓에 이전 대비 매력은 다소 낮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회사채 수요예측 결과에서 중요한 것은 금리 수준이다. 채권투자자들은 배터리 부문 성장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과 SK IET 상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재무안정성 등에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속 상승하는 주가와 달리 채권은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좀 더 냉정한 잣대를 들이민다는 뜻이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역은 “배터리 업계는 투자를 위한 자금수요를 늘리고 있다”며 “성장을 통한 외형과 수익 확대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채권투자자 입장에서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부문 글로벌 5위 사업자라는 점에서 앞으로 더욱 치열한 경쟁에 직면할 것”이라며 “최근 글로벌 시장 금리가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SK이노베이션은 신용등급 강등 등으로 조달비용 감소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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