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흔히 독서와 문학의 계절이라 부른다. 가을이 되면 들판에서 곡식을 거두어 들여 풍성함을 채우듯, 우리는 책 속에서 지식을 거두어 들여 마음을 풍요롭게 채운다.
책을 읽는데서 그치지 않고 문학작품 속의 장소를 찾아 감성을 채우는 것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마침 한국관광공사(사장 안영배)는 가을을 맞아 한국문학의 정취가 묻어나는 감성 여행지 5곳을 가볼만한 곳으로 선정했다.
가을만 되면 괜스레 설레고 괜스레 쓸쓸하다. 그런 날은 정호승의 시 한 편이 선물이고 위로다. 〈선암사〉는 이리 시작한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시인의 말을 따라 순천 가는 기차를 탄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KTX로 약 2시간 30분 거리다.
정호승이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를 낸 때가 1999년, KTX가 다니기 전이다. 시인은 긴 시간 공들여 기차를 타고 선암사에 갔으리라.
선암사는 정호승의 시가 아니라도 가을에 붐비는 사찰이다. 10월은 단풍이 조금 이르지만, 초입부터 불어드는 계곡의 바람은 의심할 여지없이 가을이다. 유유히 흐르는 계곡물에 눈을 씻는다.
그 절정은 화강암 장대석을 무지개 모양으로 연결한 승선교(보물 400호)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을 보듯 다리를 감상하거나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승선교는 지척의 강선루와 짝을 이룬다. 이름을 풀면 선녀가 내려온 누각(降仙樓)이고, 다시 올라간 다리(昇仙橋)다.
봄날에는 대웅전 앞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선암매(천연기념물 488호)를 찾았겠다. 가을에도 그 길을 더듬어 오를 만하다. 가을 선암매 앞에서는 뭉클하다. 봄날 매화에 가려 있던, 650년 된 나무의 몸짓이 보인다.
하지만 시인이 선암사에 가라 권한 장소는 따로 있다. 순천선암사측간(전남문화재자료 214호),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해우소)이다.
선암사는 돌다리가 문화재이듯 해우소 역시 문화재다. 앞면 6칸, 옆면 4칸 맞배지붕 건물로 평면은 정(丁) 자 모양이다. 정호승 시인은 이곳에서 “실컷 울어라”라고 했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줄 거라 했다. 바닥이 깊은 해우소는 으슥하다기보다 그윽하다. 선암사에 현대식 화장실이 여러 곳 있지만, 해우소에서 일을 보고 나올 때 마음의 찌꺼기도 사라진 듯하다.
선암사 해우소에서 마음의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면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에 들러볼 일이다. 선암사 가는 길에서 살짝 벗어난 산중 한옥이다. 순천시에서 생산하는 야생 찻잎으로 차를 만들어보거나 시음할 수 있다.
선암사까지 가서 송광사를 그냥 지나칠까. 송광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승을 많이 배출해, 삼보사찰 가운데 승보사찰이다.
그 모습 역시 아름답다. 선암사에 승선교와 강선루가 있다면, 송광사는 삼청교와 우화각이 마중한다. 다리와 누각이 한 몸을 이뤄 대웅보전 앞에서 기다린다. 그리고 선암사에 정호승 시인의 문장이 어려 있다면, 송광사에는 《무소유》 《산방한담》의 법정 스님이 있다.
송광사 불일암은 법정 스님이 1975년에 내려와 1992년까지 기거하며 글을 쓴 곳으로, 《무소유》의 산실이라 불린다. 하지만 경내에서 조금 떨어진 산중 암자라 무심코 지나는 이가 많다. 불일암에 이르는 길은 ‘무소유길’로 30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그 이름처럼 간간한 땀방울이 몸의 욕심을 덜어낸다. 대신 고요한 숲길의 청량함이 마음을 채운다. 실은 무소유하기 쉽지 않을 만큼 호젓하고 다감하다. 편백 숲에 정신이 혼미할 즈음, 법정 스님의 글귀가 쉬었다 가길 권하고, 대나무 숲의 정취에 취할 즈음에는 댓잎에 서걱서걱하는 바람이 스님의 법문인 양 귓가를 스친다.
그리 다다른 불일암은 고요하고 청빈하다. 법정 스님이 잠들어 있다는 후박나무(실은 일본목련이다) 그늘 아래서는 절로 눈을 감고 잠시나마 묵언할 수밖에.
다시 눈을 뜨면 발아래 채소밭과 대숲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보일 듯 말 듯하다.
스님은 당신이 만들었다는 ‘빠삐용의자’ 위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불일암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한다. 그리고 선암사와 송광사는 조계산 굴목재를 넘어 오갈 수 있다. 보통 3시간 남짓 걸린다. 보리밥집에 들르면 4시간은 잡아야 한다.
순천의 가을은 고찰에만 머물지 않는다. 순천만습지에 갈대가 흐드러진다.
그 사이를 거닐며 단풍과 다른 갈대의 매력을 만끽한다. 가족 여행객은 습지 생태 학습을 겸할 수 있다.
갈대숲탐방로 가는 길에 자연생태관, 순천만천문대, 자연의소리체험관 등 배움터가 많다. 곧장 갈대숲탐방로를 거닐어도 무방하다. 탐방로 아래 농게와 칠게, 짱뚱어 등 다양한 습지 생물이 꼼지락댄다. 연인에게는 사방이 포토 존이다. 가을빛 낭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소설가 김승옥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안개 낀 ‘무진(霧津)’의 다른 이름이다. 1964년 발표한 《무진기행》은 우리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소설이다. 작품 속 무진은 쓸쓸한 이상향이고 동경이다. 가상의 지명이지만 그곳이 순천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순천 출신 김승옥 작가 또한 “무진이 순천만에 연한 대대포”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순천만습지 탐사선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아침 무진 선상 투어’는 소설 속 무진을 경험하는 기회다. 안개가 자욱하지 않은 날에도 그 정취가 소설 못지않다. 순천만습지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김승옥 작가가 궁금한 이는 순천문학관에 가보자. 순천만습지에서 동천을 따라 도보 20분 거리다. 초가 9동 가운데 김승옥관이 있다. 소설가이자 극작가 김승옥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공간이다. 순천문학관에는 《오세암》을 쓴 동화 작가 정채봉의 전시관도 있다. 그가 법정 스님과 주고받은 편지글을 읽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순천만습지에서 와온해변이 멀지 않다. 박완서 작가가 봄꽃보다 아름답다 한 개펄이 솔섬과 어우러지는 해변이다. 특히 일몰이 장관이다. 순천만습지 용산전망대 못지않다. 근래 들어 사진 몇 장 때문에 ‘한국의 우유니’라 소문이 났는데, 그 정도는 아니고 개펄 수조의 반영을 이용하면 비슷한 느낌으로 찍을 수 있다.
시내권에는 조곡동 철도문화마을이 재미난 사진을 찍기에 좋다. 일제강점기에 조성한 철도관사마을로, ‘뉴트로’ 감성이 돋보인다. 옛 농협 창고를 개조한 청춘창고 또한 순천 여행길에 들러볼 만하다.
책을 읽는데서 그치지 않고 문학작품 속의 장소를 찾아 감성을 채우는 것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마침 한국관광공사(사장 안영배)는 가을을 맞아 한국문학의 정취가 묻어나는 감성 여행지 5곳을 가볼만한 곳으로 선정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시인의 말을 따라 순천 가는 기차를 탄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KTX로 약 2시간 30분 거리다.
정호승이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를 낸 때가 1999년, KTX가 다니기 전이다. 시인은 긴 시간 공들여 기차를 타고 선암사에 갔으리라.
선암사는 정호승의 시가 아니라도 가을에 붐비는 사찰이다. 10월은 단풍이 조금 이르지만, 초입부터 불어드는 계곡의 바람은 의심할 여지없이 가을이다. 유유히 흐르는 계곡물에 눈을 씻는다.
그 절정은 화강암 장대석을 무지개 모양으로 연결한 승선교(보물 400호)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을 보듯 다리를 감상하거나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승선교는 지척의 강선루와 짝을 이룬다. 이름을 풀면 선녀가 내려온 누각(降仙樓)이고, 다시 올라간 다리(昇仙橋)다.
봄날에는 대웅전 앞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선암매(천연기념물 488호)를 찾았겠다. 가을에도 그 길을 더듬어 오를 만하다. 가을 선암매 앞에서는 뭉클하다. 봄날 매화에 가려 있던, 650년 된 나무의 몸짓이 보인다.
하지만 시인이 선암사에 가라 권한 장소는 따로 있다. 순천선암사측간(전남문화재자료 214호),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해우소)이다.
선암사는 돌다리가 문화재이듯 해우소 역시 문화재다. 앞면 6칸, 옆면 4칸 맞배지붕 건물로 평면은 정(丁) 자 모양이다. 정호승 시인은 이곳에서 “실컷 울어라”라고 했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줄 거라 했다. 바닥이 깊은 해우소는 으슥하다기보다 그윽하다. 선암사에 현대식 화장실이 여러 곳 있지만, 해우소에서 일을 보고 나올 때 마음의 찌꺼기도 사라진 듯하다.
선암사 해우소에서 마음의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면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에 들러볼 일이다. 선암사 가는 길에서 살짝 벗어난 산중 한옥이다. 순천시에서 생산하는 야생 찻잎으로 차를 만들어보거나 시음할 수 있다.
선암사까지 가서 송광사를 그냥 지나칠까. 송광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승을 많이 배출해, 삼보사찰 가운데 승보사찰이다.
그 모습 역시 아름답다. 선암사에 승선교와 강선루가 있다면, 송광사는 삼청교와 우화각이 마중한다. 다리와 누각이 한 몸을 이뤄 대웅보전 앞에서 기다린다. 그리고 선암사에 정호승 시인의 문장이 어려 있다면, 송광사에는 《무소유》 《산방한담》의 법정 스님이 있다.
송광사 불일암은 법정 스님이 1975년에 내려와 1992년까지 기거하며 글을 쓴 곳으로, 《무소유》의 산실이라 불린다. 하지만 경내에서 조금 떨어진 산중 암자라 무심코 지나는 이가 많다. 불일암에 이르는 길은 ‘무소유길’로 30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그 이름처럼 간간한 땀방울이 몸의 욕심을 덜어낸다. 대신 고요한 숲길의 청량함이 마음을 채운다. 실은 무소유하기 쉽지 않을 만큼 호젓하고 다감하다. 편백 숲에 정신이 혼미할 즈음, 법정 스님의 글귀가 쉬었다 가길 권하고, 대나무 숲의 정취에 취할 즈음에는 댓잎에 서걱서걱하는 바람이 스님의 법문인 양 귓가를 스친다.
그리 다다른 불일암은 고요하고 청빈하다. 법정 스님이 잠들어 있다는 후박나무(실은 일본목련이다) 그늘 아래서는 절로 눈을 감고 잠시나마 묵언할 수밖에.
다시 눈을 뜨면 발아래 채소밭과 대숲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보일 듯 말 듯하다.
스님은 당신이 만들었다는 ‘빠삐용의자’ 위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불일암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한다. 그리고 선암사와 송광사는 조계산 굴목재를 넘어 오갈 수 있다. 보통 3시간 남짓 걸린다. 보리밥집에 들르면 4시간은 잡아야 한다.
순천의 가을은 고찰에만 머물지 않는다. 순천만습지에 갈대가 흐드러진다.
그 사이를 거닐며 단풍과 다른 갈대의 매력을 만끽한다. 가족 여행객은 습지 생태 학습을 겸할 수 있다.
갈대숲탐방로 가는 길에 자연생태관, 순천만천문대, 자연의소리체험관 등 배움터가 많다. 곧장 갈대숲탐방로를 거닐어도 무방하다. 탐방로 아래 농게와 칠게, 짱뚱어 등 다양한 습지 생물이 꼼지락댄다. 연인에게는 사방이 포토 존이다. 가을빛 낭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소설가 김승옥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안개 낀 ‘무진(霧津)’의 다른 이름이다. 1964년 발표한 《무진기행》은 우리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소설이다. 작품 속 무진은 쓸쓸한 이상향이고 동경이다. 가상의 지명이지만 그곳이 순천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순천 출신 김승옥 작가 또한 “무진이 순천만에 연한 대대포”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순천만습지 탐사선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아침 무진 선상 투어’는 소설 속 무진을 경험하는 기회다. 안개가 자욱하지 않은 날에도 그 정취가 소설 못지않다. 순천만습지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김승옥 작가가 궁금한 이는 순천문학관에 가보자. 순천만습지에서 동천을 따라 도보 20분 거리다. 초가 9동 가운데 김승옥관이 있다. 소설가이자 극작가 김승옥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공간이다. 순천문학관에는 《오세암》을 쓴 동화 작가 정채봉의 전시관도 있다. 그가 법정 스님과 주고받은 편지글을 읽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순천만습지에서 와온해변이 멀지 않다. 박완서 작가가 봄꽃보다 아름답다 한 개펄이 솔섬과 어우러지는 해변이다. 특히 일몰이 장관이다. 순천만습지 용산전망대 못지않다. 근래 들어 사진 몇 장 때문에 ‘한국의 우유니’라 소문이 났는데, 그 정도는 아니고 개펄 수조의 반영을 이용하면 비슷한 느낌으로 찍을 수 있다.
시내권에는 조곡동 철도문화마을이 재미난 사진을 찍기에 좋다. 일제강점기에 조성한 철도관사마을로, ‘뉴트로’ 감성이 돋보인다. 옛 농협 창고를 개조한 청춘창고 또한 순천 여행길에 들러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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