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업비밀 침해' 공방 이은 '특허'戰
LG화학은 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 및 SK이노베이션 전지사업 미국법인(SK Battery America)을 특허침해로 제소했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이 지난달 30일 미국에서 LG화학 및 LG전자를 '배터리 특허침해'로 제소한 데 따른 맞소송이다.
이로써 양사는 '영업비밀 침해'(LG화학)와 '명예훼손'(SK이노베이션) 등 1차 소송전을 넘어, '특허침해'를 두고 맞소송 2차전을 치르게 됐다.
LG화학이 특허를 침해당했다고 문제 삼은 것은 △2차전지 핵심소재인 SRS®(안전성 강화 분리막) 미국특허 3건 △양극재 미국특허 2건 등 총 5건이다. SRS® 관련 특허는 분리막 원단에 세라믹 구조체를 형성시켜 열적·기계적 강도를 높이고 내부단락을 방지해 성능저하 없이 배터리 안정성을 강화한 기술이다. 양극재 관련 특허는 배터리 양극재의 조성과 입자 크기를 최적화하는 기술과 관련있다.
LG화학은 ITC에 이들 특허기술이 사용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을 비롯해 모듈, 팩, 소재, 부품 등에 대해 미국 내 수입 전면 금지를 요청했다. 또한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는 특허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SK이노베이션이 '특허침해'로 소송을 확대하자 LG화학 측은 "그간 여러 상황을 고려해 영업비밀 침해소송 제기 이외에 자사의 특허권 주장은 자제해 왔다"면서도 "자사 특허 침해 행위에 대해서도 더 이상 묵과하지 않고 조만간 법적 조치까지도 검토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 SRS® 특허 논쟁…"무효 판결로 합의" vs "속지주의로 한국에만 해당"
다만 이번에 LG화학이 제기한 특허침해 건 가운데 SRS® 특허와 관련해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앞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된 소송 끝에 양사가 "상호 간에 추가적인 쟁송을 하지 않기로 한다"고 합의한 특허기술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 측은 "LG화학은 당시 특허법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에서 패소한 특허를 갖고 다시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데다가 '추가로 국내외 부제소'하기로 합의한 내용까지 파기하고 있다"며 "법무팀 검토를 거쳤는지도 의문시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의 합의문을 공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면서 "ITC 측에 소명 절차를 거치면 SRS® 특허 관련 소송은 기각되고, 나머지 특허에 대해서만 검토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LG화학은 "당시 합의서 상 대상특허는 한국 특허이고, 이번에 제소한 특허는 미국 특허"라면서 "특허독립(속지주의) 원칙 상 각국의 특허는 서로 독립적으로 권리가 취득되고 유지되며, 각국의 특허 권리 범위도 서로 다를 수 있다"고 반박했다.
특허 전문 변리사는 "특허권이 일반적으로 속지주의를 따르는 것은 맞지만, 양측이 과거 어떤 내용으로 합의를 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 특허기술 얽혀있어 양사 모두 피해…"총수 차원에서 문제 조율해야"
전문가들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특허권을 주장하며 서로 간의 생산·공급망을 가로막는 상황을 우려한다. 더 큰 피해를 보는 쪽이 물러날 때 까지 강대강 대치를 하는 '치킨게임'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LG화학은 특허를 침해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 모듈, 팩 등에 대해 미국 내 수입 금지를 요청했다. 미국 시장 내에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수주를 막아버리겠다는 것이다.
앞서 SK이노베이션도 특허침해를 주장하며 "LG화학 및 LG전자가 현재 생산·공급하고 있는 배터리가 자사 특허를 침해하고 있어 생산방식을 바꾸기 전에는 대체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두 회사가 자사 특허방식을 기반으로 수주한 제품의 공급중단 등 배터리 사업 자체에 상당한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LG화학·SK이노베이션 모두 상대 회사의 특허기술을 일정 부분 사용하고 있어 소송이 진행될수록 서로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두 회사 간의 합의도출이 필요한 상황. ITC에서 진행하는 소송이 민사소송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양측 모두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 모두 합의도출에 대한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입장 차이가 크다보니 최근 신학철 부회장과 김준 사장 간의 만남에서도 유의미한 협상을 진행하지 못했다"면서 "갈등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그룹 총수 차원에서 회동을 갖고 문제를 조율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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