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덕수궁관 개관 20주년이자 이왕가미술관 건립 80주년을 기념하여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전을 10월 1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최한다.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컬렉션(collection·수집작품)인데 근대미술 역사를 조명해보자는 하는 것이 하나의 목적"이라며 "건물(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지어진 1938년 그 당시 건축물 자체를 조망하는 것이 두 번째 목적"이라고 전했다.
1부 '1938년 건축과 이왕가미술관'은 1938년 이왕가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건립될 당시의 설계도면과 사진들로 구성됐다.
김종헌 배재대 건축학과 교수는 "1938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미술관으로 지어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이 건물에 대해서 조망하는 전시는 처음이다."며 "미술작품과 함께 근대 건물도 하나의 미술작품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전시를 진행하는데 건물을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건물을 잘 볼 수 있는 공간, 덕수궁관 8경을 선정해서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전시실에 들어서니 옛날 설계사무소의 느낌이 전해진다.
기울어진 책상에 설계 도면이 놓여있고 조명이 이를 비추고 있다.
첫 번째로 맞이한 작품은 '덕수궁 배치도'이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부분은 기존의 석조전(현 대한제국 역사관)과 새로운 석조전(현 국립현대박물관 덕수궁관)을 연결하는 'ㄱ'자 연결 통로이다. 통로 밑에는 기관실을 설치하고 브리지를 통해서 바닥면적을 일치시켰다.
'석조전 입면도'(역사관)도 처음 공개했다. 이 청사진은 1898년에 대한제국 역사관을 복원 공사할 때 발견돼서 화제가 됐다. 영국의 등대 전문가인 하딩이 설계한 석조전의 정면도와 배면도이다.
건너편에는 3m×3m×3m 큐브로 덕수궁관을 수학적으로 해석한 모형을 전시했다.
중앙에 파란색 부분은 가장 중심인 내부홀을 개념화해서 근대적 기하학적인 개념으로 재해석해서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덕수궁관은 기본 3m 간격을 확장해서 중앙홀 전면 길이는 17m, 전시실 좌우 길이는 25.5m, 남측과 북측의 부출입구 측면길이는 6m이다. 따라서 건물 가로 총 길이는 80m(6m+25.5m+17m+25.5m+6m)이다. 남측과 북측의 부출입구 폭은 11m(1m+3m+3m+3m+1m)이다.
김종헌 교수는 덕수궁관에 대해 "마치 음악이 음표에 의해 연주가 되듯이 기둥의 배열에 의해서 완벽한 대칭적인 형태와 고전주의 미학을 우리나라 건축물 중에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전시실은 설계도면뿐만 아니라 명세서와 현장에서 오간 서신 등도 전시돼 건물이 어떤 과정으로 지어졌는지 상세하게 볼 수 있다.
덕수궁관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회전 계단도 처음 공개됐다. 이곳을 통해 1층 수장고로부터 지붕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회전 계단의 바닥은 인조석으로 지금도 원형 그대로 유지돼있다.
2부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탄생과 1972년 근대미술 60년 전'이다. 여기에서는 1969년 국립현대미술관 설립(당시 경복궁 소재) 후, 실질적인 개관전이었던 1972년의 '한국근대미술 60년'전을 재조명한다.
이영일 작가의 '시골소녀'는 당시 이왕가미술관에서 매입해서 창덕궁의 창고에 있었던 것을 1972년 이 전시를 개최하면서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관돼 전시를 하게 됐다. 이 작품은 당시 조선미술전람회 특선작이다.
고회동 작가의 3점 밖에 없는 유화작품 중 1915년 작 '자화상'도 눈에 띈다.
고회동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존하는 158점 작품 중에 유화 작품은 단 3점이다.
그중에 한 점은 동경미술대학에서 졸업작품으로 그렸던 자화상이고, 1915년 귀국해서 수송동 집에서 그린 자화상과 1918년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을 남겼다. 구로다 학풍의 영향을 받은 고회동은 어두운 명암을 표현할 때 보라색이라든지 청색계열을 사용했다.
김주경의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은 창덕궁의 창고에서 발견됐던 작품 중의 하나이다. 대패로 날카롭게 밀어낸 듯한 명암 표현법이 특징인 이 작품은 당시 김주경이 동경미대에서 배웠던 세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추상화의 선구적 작품인 김환기의 '론도'도 전시됐다.
곡선과 직선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색면의 분할을 시도한 이 작품의 내용은 피아노와 연주를 듣고 있는 청중이다.
3부는 '1973~1998년: 기증을 통한 근대미술 컬렉션'으로 1973년~1998년 사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개관하기 이전 기증에 의해 수집된 주요 근대미술품에 주목한다.
문화재로 등록된 이상범의 '초동'은 풍경화에서 전통을 되살리면서 근대적인 면모를 반영할 수 있겠느냐는 고민의 결과가 표현됐다.
전통 산수화에서는 금강산처럼 명승지나 이상적인 풍경을 그렸다면 이 작품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을 담아냈다.
이 작품은 특히 중앙의 화선지가 겹쳐져 있다. 이것은 병풍의 형식으로 있던 그림을 당시 전시를 위해 근대적인 액자 형식으로 다시 표구한 것이다.
박생광의 '제왕'은 당시에 채색화가 일본 화풍이라고 폄하되면서 다양한 시도로 나온 작품이다.
작가는 민화와 불교 회화를 한국 그림의 원형으로 여기고 다양한 실험적인 기법을 모색했다.
오지호 작가의 경우에는 유족을 통해서 34점이나 기증했다. 그중에 한 점이 '남향집'이다.
남향집은 한국적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거론되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따뜻한 색감을 사용해서 형태를 그려냈고, 둘째 딸로 추정되는 어린 소녀도 빨간 원피스를 입음으로써 시각적인 변화를 꾀했다.
김환기의 작품도 1975년 3점 기증됐다. 그 중 '여름달밤'과 '달두개'가 나란히 전시됐다. 이 작품들은 김환기로 대표되는 '환기블루', 그 특유의 파란색의 색채가 반영됐다.
4부는 '1998년 덕수궁관 개관과 다시 찾은 근대미술'로 1998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당시 명칭 '덕수궁미술관')의 개관과 더불어 '다시 찾은 근대미술'전이 개최됐다. 여기서는 이 전시를 계기로 샀던 작품들이 전시됐다.
백문기의 '모자상' 조각은 1950년대 전쟁 후에 제작된 작품으로 당시 여성들에게 요구됐던 모성애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
여인의 팔이 유난히 두껍고 강하게 묘사돼 있어 전쟁의 위기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김복진의 '미륵불' 조각은 1935년 김제 금산사에서 공모전을 통해서 제출한 작품이다.
당시 금산사는 본전 내에 봉안될 미륵불을 공모하게 되고, 거대한 불상을 제작할 수 없다 보니까 모형으로써 석고를 떠서 작은 크기의 작품을 받았다.
이인성의 '카이유'는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으로 일본의 국내성에서 사 갔던 작품을 덕수궁미술관에서 다시 구매했다.
5부는 '미술관, 20년의 궤적'으로 1998년부터 2018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년 궤적을 살펴본다.
덕수궁관에서는 20년 동안 총 33회에 걸쳐서 개인전이 열렸고, 그 시기에 기증된 작품과 구입한 작품을 전시했다.
장운상의 '미인'은 근대기에 한국 미술의 고민을 잘 풀어낸 작품이다.
작품을 통해 전통의 계승과 서구의 영향 속에서 한국적인 것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다.
작품에서 두 명의 여성은 굉장히 스타일이 다르다. 왼쪽 여성은 현대적인 머리 스타일을 하고 목이 파인 민소매 옷을 입고 있다. 반면에 오른쪽 여성은 한복을 입고 있고, 옥가락지를 끼고, 전통적인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다. 즉 한 화면에 전통과 현대를 모두 담고 있다.
권진규의 '지원의 얼굴', '말'은 테라코타(점토) 작품으로 작가만의 독특한 기법이 엿보인다.
돌출된 부분이나 뾰족하게 나온 곳이 있다면 그것을 깎아내면서 모든 것을 절제를 통해서 단순화했다.
반면 김종명은 '작품 76-14'에서 구체적인 모양보다는 사회성을 주목했다.
구체적인 것을 표현하기보다는 추상적으로 작가가 가지고 있는 내재적인 생각을 표현했다.
류경채 작가의 '폐림지 근방'은 해방 이후 처음 열린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실성이 강조된 작품이라기보다는 그렇다고 완전히 추상적인 것도 아니다. 구상에서 출발해 비구상에 도달한 작품으로 황폐한 대지 속에서 피어나는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했다.
이중섭의 만년작품 '정릉 풍경'은 그림의 크기에 의미가 있다. 50년대 이중섭의 작품의 경우에는 작은 엽서 크기의 작품이 대부분인 데 반해 이 작품은 크기가 크다.
서양화에서는 추상화가 명확한 경계선에 의해 면 분할시도를 했다면 정탁영의 '잊혀진 것들 97-19'에서는 종이와 먹으로 뚜렷한 경계선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먹선이 스며들면서 우연한 효과를 노렸다. 즉 동양과 서양의 기법을 절충시킨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안상철의 '몽몽춘'은 수묵채색 작품에다가 돌을 붙여 놓음으로써 수묵채색 작품의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자 한 선구적인 작품이다.
이응노의 군상 연작 'NO.64'는 역동적인 기세가 느껴진다. 여러 명의 군상이 서로 손을 잡고 작품에 기세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이응노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하다.
전시의 에필로그에서는 덕수궁관 건축물을 재해석한 하태석(건축가 겸 미디어아티스트)의 신작이 소개됐다.
'건축무한 증식기하' 작품은 입방체로 이루어진 미술관 중앙홀을 중심으로 수학적 체계의 기하학적 증식을 통해 완성된다. 작가는 미술관 건축의 각 요소를 해체한 후, 이를 다시 증식 · 확장함으로써, 관객은 새로운 시공간적 체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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