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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압구정과 지방 소도시, 집값 격차에 담긴 국가 선택의 결과

한석진 기자 2025-12-24 07:46:15

주택 가격은 정책과 공간 전략이 남긴 흔적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 내 모습. [사진=백소희 기자]


[이코노믹데일리] 서울 강남의 고가 아파트 한 채 가격이 지방 소형 아파트 수백 채와 맞먹는 장면은 더 이상 이례적인 풍경이 아니다. 최근 실거래 사례를 놓고 보면 주택 가격의 격차는 단순한 상승과 하락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간 자산 가치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대비를 두고 흔히 ‘집값 양극화’라는 표현이 쓰이지만 현상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문제의 성격은 가격 격차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서울과 지방의 주택이 동일한 ‘주거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서울 핵심 지역의 아파트는 여전히 거래가 이뤄지고 가격이 방어된다. 규제와 금리 변화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유지되고 금융 접근성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반면 일부 지방의 주택은 거래가 끊기거나 극히 낮은 가격에 매매된다. 동일한 아파트라는 외형을 갖고 있지만 자산으로서의 성격은 이미 크게 갈라진 상태다.

 

이 차이는 단기간의 시장 변동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산업과 일자리의 수도권 집중 교통 인프라의 수도권 편중 금융과 신용의 배분 방식이 오랜 기간 누적되며 형성된 결과에 가깝다. 주택 가격은 그 축적된 선택의 결과가 숫자로 드러난 지표에 불과하다.
 

실제로 주택을 담보로 한 금융 환경에서도 지역별 차이는 뚜렷하다. 서울 아파트는 여전히 대출의 기반이 되지만 지방 주택은 담보 가치 평가 과정에서 보수적으로 취급되거나 금융 접근 자체가 제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주택은 주거 공간을 넘어 지역 간 자산 격차를 확대하는 매개로 작동한다.
 

24일 한국은행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서울 아파트 시가총액이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서울 등 일부 지역으로 자산과 신용이 집중되는 현상이 금융 불균형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특정 지역의 가격 상승보다 지역 간 자산 기반의 격차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책 환경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다주택 규제 강화 이후 자산을 분산하기보다 핵심 지역 한 채에 집중하는 선택이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서울은 더욱 견고해졌고 지방은 상대적으로 시장과 금융에서 멀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압구정과 지방 소도시 아파트를 단순 비교하는 장면은 자극적인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개별 단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공간 전략과 정책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주택 가격 격차를 줄이는 논의는 결국 주택 시장 내부의 수급 조정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산업과 일자리 배치 금융 접근성 지역 인프라에 대한 장기적 관점의 재검토 없이는 격차는 완화되기보다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집값의 차이는 그 자체가 원인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선택의 결과라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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