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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데스크 칼럼] 김윤덕 국토부 장관이 말한 신뢰... 신뢰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석진 기자 2025-12-23 06:00:00
한석진 기자
[이코노믹데일리] 정부가 연말로 예고했던 추가 주택 공급 대책 발표를 내년으로 미루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회에서 “공급 문제는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말은 옳다. 그러나 지금의 선택이 과연 신뢰를 쌓는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김 장관이 말한 신뢰와 시장이 체감하는 신뢰의 간극은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는 말을 아끼는 데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쌓인다. 정부는 9. 7 공급 대책을 통해 2030년까지 수도권에 135만 가구를 착공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계획이 아니라 정부가 시장에 던진 약속이었다. 이후에도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추가 대책 필요성이 제기됐고 연말 발표는 사실상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제 김윤덕 장관은 “완결성”과 “실행 가능성”을 이유로 발표 시점을 늦춘다. 정책을 다듬는 과정으로 보기보다는 약속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판단으로 읽히는 이유다.
 

김 장관의 발언에서 반복되는 단어는 ‘신뢰’다. 그러나 정책 현장에서 신뢰는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시장에서 신뢰는 일관성의 결과물이다. 한 번 제시한 방향과 수치를 얼마나 흔들림 없이 밀고 가는지가 신뢰의 기준이다. 발표를 미루는 순간 시장은 정책의 세부 내용을 따지기보다 정부의 태도를 먼저 본다. 김 장관이 확신을 잃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신뢰를 이유로 한 침묵이 오히려 신뢰를 갉아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시와의 협의가 원만하다는 설명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협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협의가 길어질수록 결정은 늦어진다. 그린벨트 해제와 도심 유휴부지 활용은 수년째 반복돼 온 이야기다. 그동안 “분위기는 좋다”는 말은 여러 차례 나왔지만 시장이 체감할 만한 확정된 결과는 드물었다. 중앙정부가 숫자와 일정을 제시하지 않는 사이 책임은 협의라는 말 뒤로 흩어진다. 김윤덕 장관이 말하는 신뢰가 이 지점에서 흔들린다.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 논의가 함께 언급된 점도 상징적이다. 공급 정책에서는 신중을 강조하고 피해 구제에서는 형평성과 재정을 앞세운다. 결과적으로 속도를 내는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주거 안정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두고 메시지는 분산되고 결단은 뒤로 밀린다. 이런 상황에서 신뢰 회복을 말하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정책 신뢰는 미래의 약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과거에 무엇을 이행했는지에서 형성된다. 김윤덕 장관이 진정 신뢰를 말하고 싶다면 발표를 미루는 선택이 아니라 이미 한 약속을 어떻게 보완하고 현실화할 것인지부터 분명히 밝혀야 한다.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숫자를 내놓지 못한 시간만큼 불확실성은 커지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김윤덕 장관이 다시 시장 앞에 설 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표현이 아니다. 미뤄진 시간에 상응하는 내용과 책임 있는 설명이다. 그것이 없다면 신뢰는 또 한 번 말로만 소비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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