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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 '1348억'이라는 징벌 과연 능사인가…'정직한 신고' 막는 개보위 과징금 폭탄

선재관 기자 2025-11-11 08:57:12

SKT, 행정소송 '만지작'…'신고하면 손해'

"차라리 과태료 3000만원 내고 덮자"…위험한 속삭임

통신 3사 [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사상 최악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일으킨 SK텔레콤에 대한 1348억 원의 '역대급' 과징금 처분이 최종 확정됐다.

하지만 이 '징벌적 제재'가 오히려 기업들의 보안 사고 은폐를 부추겨 장기적으로는 국가 전체의 보안 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역설적인'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직하게 신고했다가 천문학적인 과징금 폭탄을 맞는 것을 본 기업들이 차라리 3000만원의 과태료를 내고 사고를 숨기는 '위험한 도박'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11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지난달 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부터 과징금 1347억9100만원과 과태료 960만원 부과가 담긴 의결서를 공식 송달받았다. 이는 지난 8월 개인정보위가 의결한 제재 조치가 공식 확정된 것으로 SK텔레콤은 의결서를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SK텔레콤은 과징금 발표 직후 "조사 및 의결 과정에서 회사의 소명과 조치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유감"이라며 행정소송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한 바 있다. 2300만명이 넘는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원죄'가 있음에도 징벌의 수위가 과도하다는 불만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개인정보위는 제재 이유에 대해 "국내 1위 이동통신사업자로 사회적 책임이 큰 기업임에도 기본적 보안 실패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해커는 2021년부터 SK텔레콤 핵심 시스템에 침투해 있었고 유심 복제에 사용될 수 있는 '인증키'마저 암호화되지 않은 채 저장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안 실패'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이 '역대급 과징금'이 시장에 보내는 시그널이다. 현행법상 해킹 사고를 24시간 내에 신고하지 않으면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반면 정직하게 신고하면 SK텔레콤처럼 1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은 물론 1인당 30만원(분쟁조정위 권고안)에 달하는 손해배상 책임까지 떠안을 수 있다. 산술적으로 SK텔레콤의 총 배상액은 최대 7조원에 육박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기업들에게 '정직하게 신고하면 망한다'는 위험한 신호를 준다.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KISIA)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침해사고를 경험한 기업 중 기관에 신고한 비율은 19.6%에 불과했다. 10곳 중 8곳은 이미 사고를 숨기고 있는 셈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내부에선 차라리 과태료를 내고 조용히 넘어가는 게 낫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수백억, 수천억 과징금 리스크를 자진 신고로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보안 은폐' 관행은 결국 국가 전체의 보안 생태계를 병들게 한다. 기업들이 사고를 숨기면 피해 규모나 해킹 수법이 공유되지 않아 비슷한 유형의 공격이 반복되고 다른 기업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최근 KT가 1년 전 'BPF도어' 악성코드 감염 사실을 은폐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물론 기업의 책임을 가볍게 물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징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자진 신고 기업에 대한 과징금 감면 혜택을 대폭 확대하고 정보 공유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기업들이 '숨기기'보다 '협력'을 택하도록 유도하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지 않다면 '역대급 과징금'이라는 제재는 결국 '역대급 보안 은폐'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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