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정부가 반복되는 사이버 침해 사고에 칼을 빼 들었다. 앞으로는 기업이 신고하지 않아도 해킹 정황만 있으면 정부가 직접 조사에 나설 수 있게 되며 보안 의무를 위반한 기업에는 징벌적 과징금이 부과된다. 사실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게 보안 책임을 묻는 법제화까지 추진되면서 국내 사이버 보안 정책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뀔 전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한 관계부처는 22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범부처 정보보호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최근 민간과 공공을 가리지 않고 연이어 터지는 해킹 사고를 국가안보 차원의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기업의 책임을 대폭 강화한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정부의 조사권 강화다. 그동안 기업들이 문제를 은폐하거나 축소하려던 관행을 막기 위해 앞으로는 해킹 정황만 확보돼도 정부가 신고 없이 현장 조사를 개시할 수 있다.
처벌 수위도 대폭 상향된다. 해킹 지연 신고, 재발 방지 대책 미이행, 개인정보 반복 유출 등 보안 의무를 소홀히 한 기업에는 기존 과태료·과징금을 올리는 것은 물론 이행강제금과 징벌적 과징금 제도를 새롭게 도입한다. 개인정보 유출 과징금 수입은 피해자 지원 기금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정부는 공공·금융·통신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1600여 개 IT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전수 점검에도 착수한다. 특히 최근 해킹 사고가 잇따른 통신사에 대해서는 실제 해킹 방식을 동원한 강도 높은 불시 점검을 추진한다. 해킹에 악용된 펨토셀(소형 기지국) 등은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즉시 폐기 조치한다.
기업의 정보보호 공시 의무 대상은 상장사 전체로 확대돼 기존 666개에서 2700여 개로 늘어난다. 공시 내용을 기반으로 보안 역량을 등급화해 공개하고 기업 CEO의 보안 책임 원칙을 법제화해 경영진의 경각심을 높일 계획이다.
‘갈라파고스 규제’로 비판받던 낡은 제도도 손본다. 금융·공공기관이 강요하던 보안 소프트웨어 설치를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제한하고 획일적인 물리적 망 분리 규정도 데이터 보안 중심으로 개편한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사이버위기관리단을 중심으로 민관군 합동 대응 체계도 강화한다. AI 기반 포렌식 기술을 도입해 분석 시간을 단축하고 차세대 AI 보안 기업 육성과 화이트해커 양성 등 산업 생태계 강화 방안도 함께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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