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유럽 최대 HVAC기업인 독일 플랙트그룹의 지분 100%를 영국계 사모펀드 트라이튼으로부터 인수한다. 금액은 15억 유로(약 2조3800억원)다. 지난 2017년 오디오 기업 하만을 80억 달러(약 11조원)에 인수한 이후 조 단위의 M&A를 시도한 것은 8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한동안 대규모 사업 확장에 뜸한 모습을 보였던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사업 조정 및 기술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지난 6일 마시모 오디오 분야 사업 인수 이후 로봇·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M&A를 통한 사업확장이 이어질거라 관측했으나 이는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다. 때문에 지난 3월 이재용 회장이 사즉생 발언 이후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경쟁력 제고에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나온다. 따라서 이번 플랙트 인수가 위기에 처했던 삼성전자에 반등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된다.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분야를 목표로 HVAC기업을 인수한 것은 앞으로 발열량이 높은 블랙웰 등 AI칩이 대거 탑재된 데이터센터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기술 개발이 급속화됨에 따라 전력수요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비례해 발열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이번 결정은 삼성전자가 앞으로 데이터센터 냉각 관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기술력을 선제 확보한 것으로 풀이된다. 플랙트는 100년 이상의 기술력을 갖춘 HVAC전문 기업으로 고객 맞춤형 설계 및 솔루션 역량을 가지고 있다.
최근 수냉 쿨러 방식 및 액침 냉각 기술이 차세대 냉각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음에도 삼성전자가 HVAC 중심의 기업을 인수한 것은 여전히 공냉식 기술이 시장에서 대세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지어진 데이터센터는 대부분 공냉식을 채택하고 있다. 최근에 신설되는 센터에는 수요에 따라 액체 냉각 방식 전환이 가능하도록 설계하고 있으며 전력 피크가 높은 부분에 하이브리드 형태로 적용하긴 하지만 업계에선 본격적인 전환이 이뤄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플랙트는 액침 냉각 방식의 일종으로 활용할 수 있는 냉각수 분배 장치(CDU)도 가지고 있어 추후 전력수요가 확대돼 액체 냉각 솔루션이 필요할 때도 빠른 전환이 가능하다. 액체 냉각 솔루션은 고성능 AI칩 사용이 활성화되는 오는 2026~2027년부터 점차 확대될 예정이며 시간을 두고 그 영향력이 점차 커질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센터 전문가에 따르면 엔비디아 기준으로 H100 수준의 AI칩이나 그래픽처리장치(GPU)는 공냉식으로도 냉각이 가능하지만 B200 등 블랙웰 제품은 한 렉당 140㎾까지 전력소모가 발생하기 때문에 액체 냉각 방식의 필요성이 커진다. 특히 최근 발표한 후속 제품 루빈은 한 렉당 400~500㎾의 전력소모가 예상돼 액체 냉각 방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한국데이터센터에너지효율협회 소속 한 전문가는 "액체 냉각이 필수적인 블랙웰 등 고성능 AI칩은 당분간 공급 부족 현상이 지속될 전망으로 아직은 HVAC이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HVAC을 기반으로 액체 냉각 방식으로 전환해나가는 건 자연스럽고 타당한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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