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법인의 가상자산 계좌 개설을 단계적으로 허용하면서 침체된 가상자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지 주목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3일 제3차 가상자산위원회에서 법인 가상자산 계좌 허용 방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자금세탁과 시장 과열 우려로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를 제한해왔으나 글로벌 규제 흐름과 기업들의 블록체인 사업 수요 증가에 맞춰 규제를 완화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발표에 따르면 법인 계좌 허용은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우선 2분기부터 지정기부금단체 및 대학교 등 비영리법인이 가상자산을 매도할 목적으로 법인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그동안 가상자산을 기부받고도 현금화에 어려움을 겪었던 비영리법인들은 이번 조치로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이어 하반기부터는 상장사 및 전문투자자 등록 법인 약 3500곳을 대상으로 투자 및 재무 목적으로 가상자산 매매가 가능한 계좌가 시범적으로 허용된다. 이에 따라 삼성, SK, LG 등 대기업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가 가능해지면서 투자 심리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다만 공기업과 금융회사는 금융 시스템 안정성과 과도한 위험 노출 우려로 인해 이번 허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해외에서는 법인이 가상자산 시장을 주도하는 사례가 많고 국내 기업들의 블록체인 신사업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며 "국제 규제 흐름과 정합성을 맞추기 위해 법인 계좌 허용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오랜 기간 유지해 온 법인 거래 금지에서 규제 완화로 전환하는 만큼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접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자업계는 이번 조치를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인들이 가상자산을 투자 자산으로 활용하면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자금 융통 전략이 한층 유연해질 것"이라며 "기관 투자자의 참여로 가상자산 변동성이 완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가상자산 거래소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법인 거래가 허용되면 거래량 증가와 시장 활성화가 기대된다"며 "특히 기관 자금 유입은 시장 변동성을 줄이고 안정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 닥사) 역시 환영 성명을 내고 "이번 조치는 가상자산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중요한 첫걸음"이라며 "투자자 보호, 시장 안정성 강화, 산업 경쟁력 제고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닥사는 "금융위원회와 협력해 자금세탁방지(AML) 및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거래소 관계자는 "법인 계좌 허용으로 대형 거래소들이 더 큰 수혜를 볼 가능성이 크다"며 "거래소 간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2분기부터 거래소의 가상자산 현금화가 가능해지지만 구체적인 매각 가이드라인이 부재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가 수수료로 보유한 가상자산을 매각할 때 자체 거래소에서 매도할 수 없어 해외 거래소나 경쟁사 거래소를 이용해야 할 수도 있다"며 "이는 시세 조작 우려와 국부 유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어 조속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법인 가상자산 거래에 대한 회계 기준 미비, 공시 의무 부재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이러한 우려를 인지하고 있으며 가상자산 사업자 공동 매각 가이드라인 마련 및 금융감독원 모니터링 강화를 통해 시장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법인 가상자산 거래 관련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한 논의를 지속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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