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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 가결', 혼돈의 방송·통신 쟁점법안 표류…'앞날'은 안갯속

선재관 기자 2024-12-16 05:00:00

대통령 탄핵 정국, ICT 정책 마비 우려…미래 기술 경쟁력 '빨간불'

정치적 격변 속 ICT 업계의 위기, 정책 공백 장기화 우려 고조

'가결'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ICT(정보통신기술) 업계는 전례 없는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방송·통신 정책은 사실상 멈춰섰으며 인공지능(AI)과 같은 국가전략기술 육성 정책 또한 추진 동력을 잃고 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정책 공백은 ICT 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ICT 업계와 전문가들은 정치적 혼란이 장기화될 경우 대한민국의 미래 기술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식물 방통위' 장기화 우려…방송·통신 정책 혼란 가중

가장 먼저 영향을 받고 있는 분야는 방송·통신 정책이다.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거취가 불투명해지면서 방통위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리에 돌입하며 이 위원장의 탄핵 심리가 지연될 가능성이 큰 가운데 방통위는 단독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김태규 위원장 직무대행 체제는 이미 정책 결정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이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거취가 불투명해지면서 방통위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사진=연합뉴스]

방통위의 기능 마비는 미디어 시장 전반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OTT(Over-The-Top) 서비스와 같은 신산업 분야의 규제와 지원 정책이 중단되면서 기업들의 사업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방통위가 정책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추진하거나 기존 사업을 개선하기 어렵다”며 정책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업계의 불확실성이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방송·통신 융합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방통위의 부재는 관련 산업의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미디어 산업 관계자들은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책적 지원이 없는 것은 산업 전체에 치명적”이라며 빠른 국정 안정화를 촉구하고 있다.

◆ 방심위 국가기관 전환 논란 속 '정치적 격랑'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역시 정치적 혼란 속에서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현재 방심위는 민간 독립기구로 운영되고 있지만 최근 국회에서 방심위를 장관급 국가기관으로 전환하고 위원장의 위법 행위 시 국회 탄핵소추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의 ‘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방심위원장)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6차 전체회의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야당은 해당 법안을 통해 ‘민원 사주 의혹’에 휩싸인 류희림 방심위원장의 탄핵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가기관화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방송·통신 심의 기능을 정부가 주도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의 이러한 대립은 방심위의 정상적인 기능 수행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방심위 내부에서는 “정치적 논란이 심의 기능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법안 통과 여부가 불확실한 가운데 방심위는 심의 공백과 내부 갈등이라는 이중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 AI 기본법 ‘탄핵 정국’에 뒷전…미래 기술 경쟁력 발목 잡히나

윤석열 정부가 미래 먹거리로 내세운 AI 정책 역시 탄핵 정국으로 인해 추진 동력을 잃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던 ‘AI 기본법’은 현재 국회 통과가 불투명한 상태다. 이 법안은 AI 산업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핵심 법안으로 산업계와 학계 모두 이를 시급히 요구하고 있다.

AI 기본법은 인공지능 기술 발전과 함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규제 및 지원을 포함한다. 고위험 영역에서의 AI 사용 기준을 명시하고 기업들이 이를 준수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AI 생성물에 대한 ‘AI 워터마크’ 삽입 의무화와 같은 안전성 확보 조치는 딥페이크와 같은 기술 오용 문제를 방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 법안은 AI 산업계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여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달 26일 오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인공지능(AI) 기본법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본회의 일정조차 확정되지 못하면서 AI 기본법의 연내 처리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AI는 이미 미국과 EU를 중심으로 법제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AI 안전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혁신을 촉진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EU는 ‘AI 법률안(AI Act)’을 통해 글로벌 표준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에서는 AI 기본법의 지연으로 인해 산업 경쟁력 저하와 기술 격차 확대가 우려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 기술 발전은 속도가 중요한데 법안 처리가 지연되면 한국은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더불어 정부의 예산 집행과 인프라 구축 역시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AI 전문 인력 양성, 데이터센터 구축 등 핵심 사업들이 법적 근거 없이 추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AI 기본법이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산업 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하루빨리 입법 과정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양자·우주 등 국가전략기술 정책도 차질 우려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양자과학기술과 우주 기술 분야 역시 정치적 혼란의 영향을 받고 있다. ‘양자과학기술전략위원회’와 ‘국가우주위원회’ 등의 주요 정책 기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양자과학기술전략위원회는 국가 양자 기술 정책을 심의하는 최고 기구로 국무총리가 직접 주재할 예정이었으나 탄핵 정국으로 출범 일정이 연기되었다.

양자 기술은 초고속 컴퓨팅, 양자 암호 통신 등 국가 안보와 경제적 가치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분야로 평가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자 기술의 성장은 선진국과 기술 격차를 좁히는 핵심 열쇠”라며 정책적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기존 연구와 투자가 크게 위축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 협력 프로젝트와 양자 기술 표준화 논의에서 한국이 소외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초전도 기반 50큐비트 양자컴퓨터 모형 지난 10월 26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국내 최대 양자 기술 관련 국제행사 '퀀텀 코리아 2023'에서 참관객들이 초전도 기반 50큐비트 양자컴퓨터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우주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국가우주위원회의 회의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한국의 첫 달착륙선 개발, 차세대 위성 발사와 같은 주요 프로젝트들이 연속성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한 우주 기술 전문가는 “우주 개발은 장기적 관점에서 꾸준한 투자가 필요한 분야”라며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면 자칫 민간과 공공 부문의 협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글로벌 우주 기술 경쟁에서 한국이 뒤처질 가능성을 배가시킬 수 있다.

이와 함께 우주 산업 생태계의 활성화를 위한 법적, 제도적 틀 마련이 미뤄지면서 민간 기업들이 불확실성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주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정부의 명확한 로드맵이 없다면 민간 투자 유치도 어려워질 것”이라며 조속한 정책 추진을 촉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혼란이 장기화되면 ICT 산업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AI와 같은 첨단 기술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에 있으며 정책적 지원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최근 한국의 AI 기술 잠재력을 ‘글로벌 2군’ 수준으로 평가하며 국가적 지원 부족으로 인한 기술 격차 확대를 지적했다. 또한 IT 인프라와 인재 양성에 대한 투자가 병행되지 않으면 기술 선도국들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조속한 안정과 정책적 연속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ICT 업계는 물론 국가 경쟁력 전반에서 심각한 후퇴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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