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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단독]중국산 버스가 장악한 국내시장…원인은 알고보니 '현대'

박연수·성상영 기자 2024-08-22 07:00:00

현대차 "배짱 장사"…"자동차 출고 1년 반까지 기다려"

중국산 전기버스 신차 도입률 50.95% 기록

서울에 있는 버스 운수업체에서 충전 중인 하이거에서 제조한 중국의 전기버스 [사진=박연수 기자]
[이코노믹데일리] 지난 20일 인천 주안역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출발에 '승차감 좋다'고만 생각했다. 하차 후 정류장을 떠나는 버스 뒤편에서 의외의 답을 발견했다. 알 사람만 아는, 중국의 완성차 제조업체 '하이거' 로고였다. 이 로고를 보지 않았다면 중국산 전기 버스인 걸 눈치채지 못할 뻔했다.

중국산 전기버스가 빠르게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카이즈유데이터센터가 21일 제공한 자료를 보면 국내 버스 시장에 매년 신규 등록하는 중국산 전기버스는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 신규 등록된 전기 버스 1008대 중 중국산은 234대로 23.3%를 차지했는데 지난해엔 총 2693대 중 절반을 넘는 1372대(50.95%)였다. 신차 등록과 별개로 7월 현재 도로를 달리는 전기버스 중엔 중국산이 3551대로 38.5%의 점유율을 보였다. 국산은 5679대(61.3%)였다. 카이즈유는 국토교통부 자동차 등록 데이터를 바탕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해 제공하고 있다. 

중국산 전기버스가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는 걸 두고 그 원인이 현대차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익명을 요청한 자동차 전문가는 "국내 자동차 시장은 현재 현대와 기아의 독점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며 "자동차 관련 기술 발전이나 자동차 협력 업체,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려면 경쟁 업체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서울의 한 버스 운수업체에서 만난 관계자 A씨의 말에도 이 같은 시장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는 "현대차 전기버스 출고가 1년 반까지 걸려 구매하고 싶어도 구매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현대는 '사려면 사고 말라면 말라'는 자세"라고 토로했다. 이 회사가 운행하는 전기버스 중 하이거와 현대차의 비율은 50대50 이다. 

출고지연으로 발생하는 어려움은 고스란히 운수업체에게 돌아갔다. 신규 버스는 운행을 위해 하차 벨, 운행 기록 장치, 교통카드 단말기 등을 추가 설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운수업체는 출고 시점에 맞춰 차량 내부 인테리어 업체와 일정을 잡는다. 운수업계 관계자들은 현대차가 갑작스럽게 출고를 늦추면서 운수 업체는 물론 인테리어 업체까지 연쇄적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현대차의 출고지연 문제는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이 애용하는 1t 트럭 시장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또 다른 중국의 완성차 제조업체인 BYD는 지난해 4월 국내에 1t 전기 트럭 'T4K'를 내놨다. 

서울의 한 BYD 매장 관계자는 “T4K가 출시되기 직전인 지난해 3월 기준 현대차 포터2 일렉트릭 출고 대기 기간은 1년에 달했다는 고객 이야기를 들었다”며 “생계에 영향을 주는 만큼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우리 매장을 찾았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가격 경쟁력도 중국산이 앞섰다. T4K의 출고 당시 실구매가는 1900만원대인데 반해 포터2 일렉트릭은 약 2200만원이었다. 버스도 비슷하다. A씨는 "중국산 전기버스 가격이 1억원 가량 저렴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국내 전기버스 신차 등록 대수 [자료=카이즈유]
중국 완성차 업체들이 저렴한 가격과 빠른 출고를 마케팅 전략으로 내세워 한국에 진출하자 현대차도 뒤늦게 바빠졌다.

수도권의 한 BYD 전시장 관계자는 "(수입사인) GS글로벌에서 지난해 출시 광고를 한 뒤 포터2 일렉트릭 물량이 갑자기 시장에 풀려 우리 쪽 계약이 줄줄이 취소됐다"며 현대차가 T4K 견제를 위해 서둘러 포터2 증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전시장 관계자 말대로 지난해 출시 당시 T4K는 250여대 사전계약됐지만 주문이 취소돼 그해 213대 판매하는데 그쳤다. 올 상반기도 160여대 판매에 그쳤다.

전기버스도 다르지 않다. 수도권의 또 다른 버스 운수업체 관계자 B씨는 "운수업계 사이에서 현대가 버스 출고를 늦게 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자 올 초 현대차가 전기와 수소버스 라인을 증설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가 '배짱 장사'에 나선 데는 정부가 한 몫 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2월 환경부는 ‘2024 전기차 구매보조금 개편방안’를 발표하며 니켈·코발트·망간(NCM) 기반 삼원계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버스 보조금은 유지하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버스 보조금은 최대 60%까지 삭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전엔 배터리 종류에 상관없이 차종에 따라 동일한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지급했다.

개편방안을 두고 정부가 LFP 배터리를 주로 탑재하는 중국산 전기버스를 견제하고 현대차를 우회 지원한다는 불만도 나왔다.
실제 개편안에 따라 41인승 기준 현대 일렉트릭타운의 보조금은 6859만원, BYD e-BUS 9은 3분의1 수준인 2310만원이 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관련 정부 회의가 열릴 때면 관계자들 사이에선 한국은 현대차를 위한 시장이라는 농담 반, 진담 반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는 말도 전했다.

이 과정에서 전기버스의 화재 우려를 정부가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LFP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낮고 주행거리가 짧다는 단점과 저가에 화재 위험성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NCM은 LFP와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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