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매일 오전 9시 전, 오늘의 상장 종목이 뭐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요."
30대 투자자 이종성씨의 말이다. 이씨는 국내 증시 말고 미국 증시를 하라는 지인의 말에 "국내 시장에서도 얼마든지 수익을 볼 수 있다"는 답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오전 9시 시작하자마자 상장주를 매수하고 빠르게 매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이 하다 보면 매도 타이밍을 잘 잡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씨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국내 주식 상장일만을 기다려 빠르게 주식을 매수·매도한다. 이들은 소위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단타족'이다.
주식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익절(수익을 보고 매도)했는지 인증하며 자랑하기도 하고, 얼마나 손절(손해를 보고 매도)하고 나왔는지 등 이야기가 활발하다. 또, 일명 '천하제일 단타대회'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어떤 이들은 '투자금이 물려 일단 그대로 갖고 가봐야겠다' '언젠가 오르지 않을까' '주식 물타기를 하면서 기다릴 것'이라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
커뮤니티에서는 상장일부터 며칠간 상승세에 오른 주식이 갑자기 하락하면 '잡주(쓰레기주식)'이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20대 투자자 이하연씨는 지난 3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엔젤로보틱스'에 투자해 이익을 보다가 현재는 투자 원금보다 49.6%(9만807원) 하락해 손실을 보고 있는 상태다.
이씨는 상장 첫날 6만7400원에 해당 주식을 매수하자마자 7만3900원에 매도했다. 한 번 더 진입해도 수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이전보다 더 많은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다음날까지도 장 초반에 수익을 보고 있어 딱히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4월 초가 되자 이씨는 투자 손실을 실감했다. 엔젤로보틱스 주가가 계속해 하락세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어쩔 수 없이 계속 들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직까지도 해당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씨는 "다들 장 초에 진입했다가 빠지길래 나도 얼른 익절하고 커뮤니티에 자랑 좀 해봤다. 그런데 수익을 보고 나니, 재진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지금은 3만원대로 주가가 내려가 후회 중"이라고 했다.
공모가를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이씨는 "당시 공모가를 모르고 주변에서 당일 상장하는 주식은 무조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말에 뭣도 모르고 투자했다"고 밝혔다.
한편 엔젤로보틱스는 웨어러블 로봇 전문기업으로, 지난 3월 6~12일 진행된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결과, 최종 공모가가 희망 밴드 1만1000~1만5000원을 초과한 2만원으로 확정됐다. 이로써 현재 엔젤로보틱스 주가는 공모가보다는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공모가보다 낮아진 주식도 있다. 토스증권을 이용하는 직장인 고모(30)씨는 지난 4월 3일 액체생검 기반 암 정밀의료 기업인 '아이엠비디엑스' 코스닥 상장 첫날 단타로 이익을 봤다. 당시 시초가 2만8550원에서 출발해 4만550원에 고점을 찍고 3만6000원에 마감됐다.
고씨는 "상장 둘째 날까지 거래량도 많고 공모가보다 훨씬 높게 거래되길래 신기했지만, 그 이후로 주가가 많이 내려간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아이엠비디엑스의 주가는 오늘(5일) 9030원에 마감됐다. 고씨가 상장 첫날 매도했을 때 주가가 3만원대였다면 지금은 1만원보다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앞서 아이엠비디엑스의 공모가는 밴드 상단인 9900원을 31% 초과해 1만3000원으로 확정된 바 있다.
문제는 고씨가 투자했던 주식과 같이 공모가를 밑도는 '새내기주(신규상장주식)'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26개(스팩주 제외) 종목 중 69.23%(18개)가 공모가를 하회하며 상반기를 마쳤다.
이러한 현상은 기관 및 개인투자자들이 공모주에 관심을 보이면서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다. 증권사와 기관투자자 사이에서는 '공모주 사업은 깔고 간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공모주 쏠림 현상이 심해지는 추세다. 공모주가 단기 차익을 노리는 시장으로 변질된 것이다.
공모주 주주들의 상장일 매도 현상이 고착화되면서 기업공개(IPO)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들이 희망 가격 상단보다 올려 써내는 일도 다반사다. 증권업계는 수요예측 첫날에 높은 가격에 주문하면 가점을 주는 '초일가점' 제도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물량을 받으려면 기업 가치와 상관없이 공모가를 높여 접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개인투자자들이 '주가 올려치기' 된 공모주에 집중적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코스닥 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 관계자는 "공모 시장에 자금이 몰리는 건 긍정적이지만, 공모가가 부풀면 투자자도 손하고 기업과 주관사도 '레퓨테이션 리스크(부정적인 비판이 퍼지는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업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무지성으로 투자하면 정부와 금융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정책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모주의 신규상장 가격 제한 폭을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4배에서 2배로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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