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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기자수첩] 적기조례 석유법, 단호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

유환 기자 2024-03-12 18:31:10

영국 적기조례 자동차 산업 발전 막아

석유법 미래 친환경 연료 사업에 걸림돌

전략 자원이 아니라 전략 사업으로 바라보는 변화 필요

사진=이코노믹데일리 산업부 유환 기자
[이코노믹데일리] 모든 규제는 필요에서 나온다. 지금은 무지한 악법으로 여겨지는 영국 적기조례(Red Flag Act)도 그랬다.

탄광에서 물을 퍼내던 증기기관은 공장에서 면화를 만들었으며 이어 사람들을 싣고 날랐다. 문제는 기술력의 한계로 종종 폭발 사고가 일어났고 증기 자동차로 일자리를 잃은 마부들의 반감을 샀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 겹치자 정부에선 증기 자동차 앞에서 붉은 깃발을 들어 위험성을 알리게 했다. 제한 속도도 시속 10마일(16km), 시가지에선 5마일(8km)로 규제했다. 붉은 깃발을 들게 해 '적기조례'로 불리는 이 법은 장장 30년간 지속됐다.

그 사이 영국의 증기 자동차 사업은 위축됐다. 후발 주자인 독일과 미국에 자동차 산업 패권이 넘어가는 건 당연했다. 영국이 뒤늦게 적기조례를 폐지했지만 이미 넘어간 산업 주도권은 돌아오지 않았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소위 '석유법'이라 불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휴전국이자 사실상 섬 국가인 우리나라에 있어 석유는 귀중한 자원이었다. 석유법 1조를 보면 석유 수급, 가격 안정, 품질 확보를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보수적으로 만들어진 석유법이 미래 사업의 발목을 잡았다. 올 1월 개정 전까지 석유법에선 정유사가 원유 이외의 원료를 정제하지 못하도록 막았었는데 이에 따라 친환경 바이오 연료를 만들지 못했다.

가짜 휘발유를 만드는 걸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법안이 지속 가능 항공유(SAF)와 같은 미래 기술을 막은 것이다. 친환경 연료를 만들 수 있도록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외국보단 한참 늦은 상황이다. 

지난해 휘발유와 경유, 등유 등을 합친 석유제품 수출액은 521억6000만 달러(68조3600억원)였다. 반도체, 자동차, 일반기계 다음으로 수출액이 많은 품목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유는 '전략 자원'이라는 족쇄에 잡혀 있다.

의도와 무관하게 한국에서 또 다시 적기조례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외국에선 SAF에 막대한 세제 혜택을 주는 상황이다. 주요 수출 품목을 잃기 전에 정유를 '전략 자원'에서 '전략 사업'으로 바라보는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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