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정부는 이달 중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관련 시행령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단통법이 폐지되기 위해선 국회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등 수 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그 이전이라도 국민들의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모색하겠다는 계획이다.
성태윤 대통령정책실장은 지난 2일 브리핑을 열고 "통신사 간 단말기 보조금 지급 경쟁을 촉진할 수 있도록 가급적 2월 중 단통법 관련 시행령을 개정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통신사와 유통점이 가입 비용, 요금제 등을 고려해 자유롭게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시행령상 가능한 부분들은 개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성 실장은 "단통법이 완전히 폐지된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지원금 형태를 통해 단말기 가격이 낮아질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이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이는 통신사와 유통점이 가입 비용, 요금제 등을 고려해 자유롭게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시행령상 가능한 부분들을 개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성 실장은 "시행령상에서 가능한 부분들은 지금 개정하려고 하고 있다"며 "단통법이 이제 사실상 폐지되는 과정에 있어서 추가로 소비자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각 행정 부처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통법 폐지와 관련해 국회와의 협의에 대해서는 "단통법의 경우 국회 통과가 필요하다"며 "여야 관계를 떠나 국민들께 이익이 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야당에서도 협조해 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 법 개정 전까진 공시지원금 혜택이 선택약정할인 넘기 어려울 듯
방통위의 통신사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더 높인다고 해도 공시지원금 혜택이 선택약정할인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통신사들은 선택약정할인을 공시지원금보다 선호하며, 이는 월 요금에 비례해 할인 혜택이 늘어나기 때문이다.LG유플러스는 최근 갤럭시S24의 공시지원금을 최대 22만원까지 올렸다. SK텔레콤과 KT도 조만간 갤럭시S24의 공시지원금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 4만~13만원의 5G 요금제를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19만4000원~45만원의 공시지원금을 제공하며 대리점이나 판매점의 추가 지원금 15%를 합하면 고객들은 약 22만~52만원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현재로서는 공시지원금이 늘어나더라도 선택약정할인의 혜택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고객들은 기기값을 할인해주는 공시지원금과 매달 요금을 할인해주는 선택약정할인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LG유플러스의 같은 요금제 기준으로 보면 갤럭시S24의 선택약정할인은 28만~78만원으로, 공시지원금과 추가지원금의 합계보다 20~50% 많다.
또한 공시지원금은 신제품을 구매해야만 받을 수 있는데 스마트폰이 점점 고급화되면서 소비자들의 신제품 교체 주기가 길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선택약정할인이 점점 더 주류가 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다음 달에 선택약정을 1년 단위로 갱신해 위약금 부담을 줄이는 사전예약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과기정통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의 선택약정 가입자는 2600만명으로 이는 '고객용 휴대폰' 가입자 5600만명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통신사들 역시 수익성 관리 측면에서도 선택약정할인을 더 선호하고 있다. 공시지원금은 '마케팅 비용'으로 분류되며, 공시지원금을 제공하면 매출의 일부가 비용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따라서 회사의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을 유지하면서 매출을 희생하는 것이 더 낫다는 입장이다.
방통위의 압박으로 인해 갤럭시S24 시리즈의 공시지원금이 증가하기 시작했지만 가계통신비 인하에 실질적으로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는 각 기관의 수장까지 직접 나서서 단통법 폐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방통위는 지난달 31일 이통 3사를 불러 당일 출시된 갤럭시S24의 공시지원금을 확대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30일에는 삼성전자를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
한편 단통법은 일부 사용자에게만 과도하게 지급된 보조금을 모두가 차별 없이 받게 하고, 소모적인 보조금 경쟁을 없애자는 취지에서 2014년 제정됐다. 하지만 시행 후 오히려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보조금 경쟁이 줄면서 소비자들이 단말기를 더 비싸게 구입하게 됐고, 이에 따라 가계통신비 부담이 늘었다는 비판이 일면서 10년 만에 폐지 방침이 발표됐다.
◆ 단통법 없어지면 통신사 부담 가중될까
통신업계에서는 이동통신 단통법이 폐지되더라도 통신사들이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5G 가입자가 정체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통신사들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비용 부담을 늘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플래그십 스마트폰의 출시 시점에 따라 마케팅 비용이 일시적으로 상승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마케팅 비용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며 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5G 보급률이 70%에 가까워진 상황에서 번호 이동 경쟁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통사의 5G 보급률은 모두 60%를 넘어섰다. 특히 KT의 경우 71.1%로 가장 높았다.
비대면 서비스 가입이 확산된 것도 단통법 폐지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통신사 대리점이 아닌 삼성스토어, 애플스토어, 네이버, 쿠팡, 11번가 등 이커머스 사이트에서 직접 구매하는 소비자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사들이 마케팅비를 대폭 쏟아붓는 출혈 경쟁이 시작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통신 3사의 마케팅 비용 합계는 2019년 5G 도입 초기에 가입자 모집 경쟁으로 7조7100억원으로 집계되었으며, 2021년에는 7조9500억원까지 증가했다가 2022년에는 7조7500억원, 지난해에는 7조6300억원으로 줄었다.
또한 통신사들의 마케팅 비용 효율성이 향상되어 부담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도입하면서 고객 성향을 정확히 분석하고 타케팅 전략을 구축해 놨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보조금 전략을 집행하던 것이 수익성이 높은 일부 고객에게 보조금 및 프로모션을 적용하는 전략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전망이다.
한편 휴대폰 '성지'로 불렸던 서울 신도림·강변 상가매장들도 단통법 폐지를 환영했다. 대리점 규모가 클수록 판매 장려금이 커지고 할인율도 높아지는 구조여서 단말기 판매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판매점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과거에는 제조사 중 스카이가 보조금을 많이 실었고 LG가 경쟁하는 구조였다면 이들이 사라진 시장에서 삼성이 단단한 애플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보조금을 풀지 의문"이라며 "통신사들도 알뜰폰이 생긴 이후 예전만큼 시장 점유율 유지에 목 매지 않는다. 판매점들 사이에 출혈 경쟁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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