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전문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건설사들이 자금 집행 시기를 미루는 방식으로 유보금을 늘리는 바람에 자금 확보를 위한 대출 확대 등 금융비용이 늘어났다.
그동안 건설사들은 “계약이행 의무 또는 하자 보수를 담보한다”며 하청업체에 줘야 할 돈의 일부를 관행적으로 지급하지 않고 유보해왔다. 하지만 건설경기가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지급하지 않는 대금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유보금이란 원사업자가 하자 보수 등을 담보하기 위해 하도급 대금의 일부를 하청업체에 지급하지 않고 지급을 미뤄 두는 돈을 말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실태조사를 보면 하청업체의 44%가 하도급 거래에서 유보금 설정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현행 하도급법에는 유보금과 관련된 별도의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하도급 계약 과정에서 유보금 관련 특약을 설정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가 마련한 건설표준하도급계약서에 유보금과 관련된 명시적 조항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계약서는 하도급 불공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건설 하도급 시장에 유보금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특히 유보금과 관련된 명확한 기준이 없어 현장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등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건설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호황일 당시에는 유보금을 크게 걸어두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유보금 비율이 20% 중반대로 높아져 비용 부담이 상당해졌다”라며 “종합건설사로부터 지속해서 일감을 받아와야 하는 상황이기에 당연히 받아야 할 돈임에도 지급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힘든 것이 하도급업체의 실정”이라고 했다.
한 전문건설업체의 핵심 관계자도 “유보금 관행으로 중소업체는 자재, 장비 대금을 제때 지급하려면 사채를 끌어다 써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까지도 연출된다”라며 “최근 전체 매출에서 유보금 비율이 30%까지 높아져 자칫 돌발 변수가 튀어나오면 회사의 존폐까지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더해 최근 자금 사정이 나빠진 건설사가 하도급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게 되면서 대금 미지급 수단으로 유보금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전문건설업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 정부도 유보금 갈등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유보금 갈등을 줄이기 위해 표준하도급계약서에 유보금 규정을 추가할 예정이다.
일단 공정위는 유보금 자체가 대금 미지급에 해당할 가능성이 커 권장할 내용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다만, 법원에서 유보금 관련 특약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유보금 관련 법원 판례와 업계 현실 등을 고려해 내년에 표준하도급계약서 개정에 반영할 계획”이라면서 “법원에서 성능검사를 위한 유보금은 부당특약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도 있다”고 했다.
공정위 내에서는 표준하도급계약서에 유보금을 설정할 수 없는 부분을 명확하게 하는 방안이 우선 거론된다.
하자보수보증서를 발급한 경우에는 하자보수를 이유로 유보금 설정을 못 하게 하거나, 하자보수 금액을 뛰어넘는 수준의 과도한 유보금 약정을 금지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불법적인 유보금이 명확하게 되지만, 동시에 허용이 되는 유보금도 생기게 된다.
건설업계도 공정위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정위의 표준하도급계약서 활용이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공정위 조사 과정 등에서 위법성을 가리는 지침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도급 계약이 많은 전문건설업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불법적인 유보금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전문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현장에서 유보금이라는 단어가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면서 “불법성이 짙은 유보금 제도는 금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원청사인 종합건설업계는 관행적인 유보금 제도까지 과도하게 금지하는 것에 경계감을 드러내고 있다.
종합건설사 관계자는 “악의적인 유보금을 금지하는 규정을 마련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이 과정에서 성능검사를 위한 유보금 등 꼭 필요한 유보금까지 규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는 “종합업체는 유보금을 하자보수용이라고 주장하지만, 하자보증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음에도 하도급업체 길들이기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만약 종합업체가 부도나면 손실을 떠안게 되는 만큼 공정한 거래문화 확산을 위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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