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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장은주의 여車저車] '세계 3위' 현대차그룹 만든 '포니 정신'

장은주 기자 2023-06-05 09:56:44

현대차, 자동차 늦깎이에서 '퍼스트 무버'로

포니에 담긴 정주영의 뚝심…정의선이 계승

현대그룹 창업주 고(故) 정주영 회장 20주기 추모 이미지[사진=아산 정주영 20주기 추모 사이트]

"과거를 알면서 미래를 생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옛날에 힘들게 노력한 모든 것을 다시 살리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레이크 코모에서 열린 현대차 리유니온 행사에 첨석해 49년 만에 복원된 포니 쿠페 콘셉트 모델을 공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정의선 회장이 말하는 '과거의 노력'은 현대그룹 창업주 고(故) 정주영 회장, 그리고 그와 함께한 '창업 동지'들을 두고 한 말로 해석된다. 1967년 다른 기업보다 늦게 자동차 산업에 발을 담근 현대차그룹은 반 세기 만에 전 세계 자동차 트렌트를 주도하는 판매량 3위 기업이 됐다.

◆해외 위탁생산 공장 찾은 포드, 독자 생산 꿈 꾼 정주영

1960년 한국 자동차 산업은 해외 부품을 들여 조립하면서 시작됐다. 1955년 시발자동차를 만든 국제차량제작소를 시작으로 신진자동차(1957년), 새나라자동차(1962년), 아세아자동차(1965년) 등이 생겨났다. 일제강점기 자동차 정비소로 사업을 시작한 정주영 회장은 1967년 12월 오랜 꿈인 완성차 생산에 뛰어들었다.

이 무렵 미국 포드는 한국 시장 진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정주영 회장은 미국에서 유학 중인 동생 정세영(훗날 HDC그룹 명예회장)에게 포드와 접선하라 지시했다. 정세영 회장은 곧장 포드 본사를 방문해 기술 제휴 의사를 전달했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곧이어 현대차는 포드에서 '코티나'를 들여와 생산했다.

포드는 1969년 자연재해로 현대차 공장이 침수돼 자동차 판매에 타격을 입자 자금력을 문제 삼았다. 정주영 회장은 이에 분노하며 정세영 회장에게 한국 기술·부품을 사용하는 국산 자동차 생산을 지시했다. 이는 현대차가 독자 생산, 기술 자립에 매진한 배경이 됐다.
 

현대차 최초의 독자 생산 모델 '포니'[사진=현대차]

◆포니의 탄생

포드와 결별한 현대차는 1974년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 차기 독자 생산 모델 디자인을 의뢰했다. 그리고 영국 완성차 회사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부사장 조지 턴불을 영입해 생산에 필요한 노하우를 얻어냈다. 차량 밑바탕이 되는 플랫폼과 엔진 등 기술은 일본 미쓰비시에서 도움을 받았다. 그 결과물로 1975년 후륜구동 세단 '포니'가 탄생했다.

포니는 출시 첫해인 1976년 1만726대가 판매되며 43.6%의 점유율을 차지해 승용차 시장 1위에 올라섰다. 이후 내수시장을 키우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며 1981년까지 5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했다. 포니가 나오기 전 1만8000대 규모였던 국내 시장은 1979년 8만9000대로 성장했다.

현대차는 포니로 첫 수출이라는 영광도 안았다. 1976년 현대차는 에콰도르에 포니 6대를 시작으로 13개국에 총 1042대를 수출했다.

◆현대차에 닥친 위기 그리고 재도약

현대차의 독자 생산 시작과 수출로 상승세를 타던 국내 자동차 시장에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란이 1978년 석유 수출을 중단하자 '제2차 오일쇼크'가 발발했다. 전두환 정부는 기업 도산을 막기 위해 1979년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라는 인위적인 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소형차는 현대 △중형차는 대우(새한자동차) △상용차는 기아(기아산업) △특장차는 동아(쌍용자동차)가 생산하게 됐다.

이 조치는 1987년에 해제됐다. 현대차는 중형차 시장을 휩쓴 대우의 로열 레코드에 대항하기 위해 1988년 쏘나타(Y2)를 내놓았다. 당시 쏘나타는 큰 실내와 조용한 엔진 등으로 큰 인기를 끌어 이듬해 국내에서 7만9000여대가 팔렸다. 쏘나타의 성공으로 현대차는 △소형차 엑셀 △중형차 쏘나타 △대형차 그랜저라는 '삼두마차'를 갖게 됐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한국은 세계 자동차 생산 대국으로 도약했다. 기업 간 첨단 기술 경쟁이 본격화됐으며 해외 생산 거점도 본격적으로 구축되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엔진과 변속기를 포함한 모든 부품을 현대 독자 기술로 만든 최초의 차 엑센트를 출시했다. 당시 현대차는 △4도어 세단 △5도어 해치백 △3도어 해치백 세 가지 모델 엑센트를 선보였다. 엑센트는 작고 가벼운 차체를 구현해 특히 모터스포츠 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내수시장이 무너지고 대우와 기아차가 잇따라 도산하면서 현대차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휘말렸다. 1998년 12월 현대그룹은 기아차를 인수하고 현대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현대그룹은 이사회 의장에 정세영 명예회장을 임명하고 정몽구 당시 현대그룹 회장을 현대차 회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1999년 정세영 회장은 현대차를 떠나게 된다.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모델[사진=현대차]

◆세계 시장 이끄는 글로벌 3위로 도약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 경영에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재도약한다. 2001년 현대차는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9위에 올라섰고 2010년 5위를 기록했다.

포니가 출시된 지 47년 뒤인 2022년, 현대차는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3위에 올랐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과 코로나19 경기 둔화로 수요 감소와 같은 악재 속에서도 최고의 성과를 이뤘다.

독자 생산 자동차를 만들려는 정주영의 꿈은 오늘날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선두주자)' 현대차그룹이 됐다.

오너 3세인 정의선 회장은 고전 모델인 포니를 전기차로 복원하면서 '현대 헤리티지'를 직원과 고객 모두에 알리고 있다. 이런 정의선 회장의 새로운 도전은 마치 혁신의 상징인 정주영 회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약 반세기 만에 재탄생한 포니 쿠페 콘셉트는 과거를 통해 미래로 성장한다는 정의선 회장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정주영 회장은 혁신을 토대로 사업 기반을 만들었고 정세영 회장은 포니를 수출해 현대차를 알렸다. 오너 2세인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정의선 회장의 현대차는 선대 회장들의 뜻을 이어 더 큰 혁신을 약속하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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