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1. 13년째 서울 종로구 종로꽃시장에서 화분을 파는 서모(60·여)씨는 치솟는 도맷값에 도저히 판매가를 맞출 수 없다고 토로한다. 그간 꽃 화분 개당 3000~5000원에 팔았지만 작년 대비 도맷값은 300~500원 올랐다. 소상공인에게 연간 상승률 10%는 거의 수직 인상인 셈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생활비 2000만원가량 신용대출 받은 서씨는 19일 현재까지 연 16% 이자 부담을 호소한다. 1년 전보다 대출 금리가 5%포인트 오르자 그야말로 등골이 휜다고 했다. 이날 취재진과 만난 당시에도 꽃 가격만 묻고 "비싸다"며 고개를 젓는 행인이 태반이었다.
#2. 의류 원단과 부자재 거래로 시끌벅적했던 서울 중구 동화상가도 손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이곳에서 원단을 납품하는 유모(63)씨는 작년부터 물가가 폭등하면서 일본 거래처가 가격을 후려친다고 하소연했다. 은행에서 빌린 사업자대출금 5000만원 금리도 2년 만에 연 2.1%에서 4.7%로 치솟았다.
유씨는 코로나19 피해가 극심했던 지난 2~3년 전, 시장 측에서 임대료와 관리비를 감면해 줬는데 현재는 거리두기가 풀려 월세에 숨이 막힌다고 한다. 그러면서 취재진에게 본인 가게가 있는 상가 2층까지 올라올 때 "문 닫은 매장이 몇 개인지 봤냐"고 되물었다.
유씨 매장 옆으로도 '권리금 없음', '임차인 모집' 등 안내문이 붙은 셔터들이 줄줄이 잠겨 있었다. 가게 문 전체를 임차인 모집 플래카드로 완전히 덮은 곳도 보였다.
#3.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잡화점 운영경력 50년에 달하는 이모(81)씨는 일단 가격부터 깎고 보는 고객에게 "그러지 마세요"라고 푸념한다. 도매가격이 20% 정도 급등한 최근 3년간 본인만큼은 소매가를 올리지 않았다는 하소연이다.
이씨는 "먹는 걸로는 아무 말 않는 사람들이 우리 같은 상인한테만 흥정한다"며 "그럴 때마다 만약 집값이 5억원에서 15억원으로 올랐으면 우리도 그렇게 받아도 되냐고 반문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 주도의 소상공인 대출을 받느니 안 먹고 안 쓰는 편을 택했다며 돌아가는 기자에게 "금리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귀띔했다.
통화당국으로서 한국은행은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기존 3.50% 금리를 동결했다. '물가와의 전쟁' 기조로 소비자물가 상승 여부에 주목한 한은이 올해 들어 물가가 꺾였다는 판단을 내리면서다.
직접 들어 본 서민들 목소리는 정반대였다. 서민경제 바로미터라 일컫는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당국이 밝힌 물가 안정도와 체감경기 간 차이를 묻자 모두 생계에 허덕인다는 답변뿐이었다.
한은은 지난 2월 올해 처음 열린 금통위에 이어 이번까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금융권이 지배적으로 관측한 국내 최종금리 상단을 찍었다는 평이다. 특히 대표적 물가 지표인 소비자물가지수 3월분은 110.56으로 작년 동기 대비 4.2% 올랐다.
상승률만 보면 2월(4.8%) 대비 0.6%포인트 하락했으나 작년 3월(4.1%)과 비교하면 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찍었다. 금통위 내 통화 정책 완화를 선호하는 '비둘기파'가 그 반대인 '매파' 진영보다 목소리를 높였을 것으로 예상한 이유다.
소비자물가 전망치도 유지했다. 앞으로 물가상승률이 작년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기저효과, 수요 압력 약화 등의 영향으로 2분기 이후 3%대로 낮아지는 등 둔화세가 이어갈 것으로 보여서다.
한은은 "올해 연간으로는 지난 2월 전망치(3.5%)에 부합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당국 스탠스와 달리 소상공인이 느끼는 물가의 기준점인 도매가의 경우 작년보다 10% 이상 우상향을 나타내고 있다.
남대문시장에서 15년째 과일을 파는 박모(63)씨는 "배를 산지에서 바로 사면 개당 2000원인데 운송비를 합치면 2500~3000원 정도 한다"며 "하우스 연료비·전기요금·관리비 등 에너지 관련 물가도 (물가에) 악영향을 준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시장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옷감 실 가게를 40년째 하는 이모(65·여)씨는 "달러 약세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체감도가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수준이라며 원자재 수입에 애를 먹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무엇보다 중국의 오랜 코로나19 봉쇄 정책 때문에 공급망에 차질이 생긴 것도 인플레를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은행권 대출 금리를 겨냥해 잇따라 인하 압박을 넣는 금융당국과 이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말라"고 견제하는 통화당국 간 힘겨루기는 서민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기준금리 동결 후 열린 거시금융정책 책임자 회의에서 "금리를 너무 미시적으로 조정하려 하지 말라"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정면 겨냥한 것이 시발점이다.
윤석열 대통령 심복이자 '대통령의 발'로서 은행권 금리 인하를 정조준 중인 이 원장은 상생 금융을 강조하고 있지만, 금리 결정의 최종 의결권이 있는 한은 수장과 사실상 다른 노선을 탄 양상이다.
그럼에도 이 원장은 지방은행 순회 등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예대 금리차에 따른 역대급 순이익으로 은행권 '돈 잔치'를 막겠다는 의미다. 실제 통화 긴축 기대감을 선반영한 시장(은행채) 금리 하락 영향으로 시중은행 대출금리는 1년 반 전 수준으로 내려갔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실행 중인 주택담보대출 고정(혼합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3.64~5.80%다. 지표금리로 일컫는 은행채 5년물 금리가 한 달 사이 0.619%포인트 하락한 게 주효했다.
이 총재는 물가 안정 노력이 수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는 전언이다. 금융당국이 금리 조정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나머지 물가가 충분히 하락하지 않을 경우 고금리 고통이 더 길게 이어질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이 이어지자 당국 간 엇박자를 향한 지적들이 쏟아지고 있다. 당국도 논란 불식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나, 이 총재는 최근 방문한 미국 워싱턴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수준이 완화적이라는데 동의할 수 없고, 유동성 추이나 부동산 가격 하락 등을 봐도 금리 수준은 현재 상당히 긴축적"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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