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이미 고인이 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어록 중에 “연구·개발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농부가 배고프다고 뿌릴 종자를 먹는 행위와 같다”는 말이 있다. 연구·개발(이하 R&D)의 중요성을 이보다 더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경제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적극적으로 R&D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R&D에 투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기업이 어렵다고 하여 예외는 아니다. 아니 어쩌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R&D 예산을 투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부도 기업만큼은 아니지만 △반도체‧차세대원전 등 초격차 국가전략기술 강화 △우수‧항공 등 미래 도전적 과학기술 확대 △디지털 기반의 핵심기술 개발 등 디지털전환 촉진 △탄소중립, 국가전략기술‧탄소중립‧반도체 등 미래 핵심인재 양성 등의 분야에 R&D 예산을 집중 투입한다.
하지만 2023년도 R&D 분야 예산안을 분석해보면 정부의 R&D 분야에 대한 투자 의지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내년 R&D 분야 예산안 규모는 30조7000억 원이다. 2022년도 예산 29조8000억원보다 약 9000억원 정도가 늘어난 수치다. 증가율은 3%다. 증가율만 놓고 보면 최근 5년간(2017~ 2021년) 연평균 증가율 8.9%에 비해 약 1/3 수준으로 감소했다.
국가재정운용계획만 봐도 R&D 투자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R&D 투자 총지출 연평균 증가율은 6.6%로 같은 기간 정부 총지출 연평균 증가율 5.5%보다 1.1%p 높게 잡고 있으나,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상 R&D 예산 총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3.8%로 정부의 총지출 연평균증가율 4.6%보다 0.8%p나 낮게 계획했다. 이에 따라 총지출 내 R&D 분야 비중이 2022년 4.9%에서 2023년 및 2024년 4.8%로, 2025년 및 2026년에는 4.7%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총액으로만 보면 R&D 분야 예산이 매년 9000억원씩 증액된 것으로 보이지만 연평균 증가율이 떨어지고 정부 총지출 증가율보다 낮게 책정한 것은 국가 정책적 측면이나 예산 배분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R&D에 대한 예산은 미래 가치를 위한 투자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고 다른 쓸 곳이 많다고 하여 R&D 예산의 증가율을 감소하는 방향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R&D 대한 투자는 그 성격상 당장의 괄목할만한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실용적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기업이 투자하기 어렵고, 장기적·거시적 관점에서 추진해야 하는 사업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대표적인 예다. 기초과학에 대한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투자가 없으면 나중에는 연구개발비 이상의 대가를 지급하면서 원천기술을 빌려 써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정부와 민간의 R&D 예산 총합이 100조원 시대를 맞이했다. 이 정도면 세계 5위 수준이라고 한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지만, 정부의 R&D 예산은 장기적으로 40조 이상으로 확대하고 정부와 민간 R&D 합계 역시 세계 3위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R&D에 대한 투자가 곧 국가경쟁력이니만큼 R&D 투자에 대한 획기적인 발상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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