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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금융위 4년차 샌드박스, 절반이 '우려먹기'…치적쌓기 논란에 "신임 장관에 직보"

신병근 기자·김소연 수습기자 2022-05-17 05:00:00

본지, 총 211지정건 분석…동일名·내용 110건

위원장 3명 임기동안 '재탕 삼탕' 합격증 남발

정치권·전문가 "이름만 혁신, 전시행정 실상"

당국 "사실 아니다" 반박…"차기 위원장 보고"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최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시중은행장과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이코노믹데일리] '혁신'을 키워드로 만 3년째 추진해 온 금융위원회 핵심 사업인 '금융 규제 샌드박스(혁신금융서비스)'는 결국 당국의 실적쌓기용에 그쳤다. 장관급 예우를 받는 금융위원장 3명의 임기 동안 혁신금융서비스 심사대는 사실상 '프리패스' 격으로 운영됐다.

핵심은 4년 차를 맞은 본 사업 시기에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200여건 중 유예받은 규제와 사업 내용, 심지어 서비스 명칭까지 똑같거나 유사한 사례가 무려 절반에 달한 점이다. 심사·지정 시기만 다를 뿐 '혁신금융'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동일 사업이 쏟아지는 내내 금융위는 '지정 건수' 늘리기에만 혈안이었던 셈이다.

규제에 묶여 사장되는 신(新)서비스를 아이들 모래놀이터(샌드박스)처럼 자유롭게 시험하도록 '혁신의 실험장'을 제공한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결과적으로 '중복 집계' 오류에 빠진 금융위 스스로 치명적인 균열을 드러냈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이런 주먹구구식 행정을 맹비난하며, 제 기능을 상실한 금융위를 해체·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만3년째 '중복' 심사·선정해 치적쌓기用 의혹…"집계 방식 개선해야" 

2019년 4월 첫 시행 이후 금융위가 16일 현재까지 취합한 혁신금융서비스는 모두 211건이다. 하지만 본지 분석에 따르면 서비스 명칭과 내용이 겹치는 혁신금융서비스는 110건에 이른다. 지난 2월 지정받은 '국내주식 소수단위 거래 서비스'는 한국예탁결제원을 포함 대·중형 증권사 등 25개사가 참여하고, 작년 11월에는 21개 금융투자업체가 똑같이 '해외증권 소수점거래 서비스'를 지정받았다.

당국 설명처럼 이용자 편의성을 확대하기 위해 복수 금융사가 동일한 혁신금융서비스를 실행한 것이라 해도, 단일 건으로 집계하지 않고 참여회사별로 총계하는 것은 건수를 늘리려는 '꼼수'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일례로 '국내주식 소수단위 거래 서비스'를 1건으로 잡지 않고 참여하는 25개사를 모두 산정해 25건으로 집계하는 식이다.

주식 소수점 거래 서비스의 경우 당국 승인과 실행 날짜가 같지만, 상당수 다른 서비스는 지정 날짜가 상이한데도 규제 유예 특혜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1개 금융사가 혁신성, 금융소비 안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업 구상 후 당국 심사를 받고서 서비스를 내놨지만, 또 다른 회사들이 명칭도 바꾸지 않은 채 동일 사업을 줄줄이 심사대에 올리는 격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금융위는 별다른 조처 없이 무더기 '합격증'을 남발했다. '안면인식' 기술을 예로 들면, 신한카드가 작년 11월에 지정받은 '안면인식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실명확인 서비스'는 이미 토스증권이 1년 전(2020년 12월) 첫 번째로 지정받았다.

이 서비스는 앞서 △DGB대구은행 '안면인식 기술 활용 비대면 실명확인 서비스' (2020년 5월 지정) △카카오뱅크, 토스증권, 토스혁신준비법인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실명확인 서비스' (2020년 12월) △코인플러그 '안면인식기술 기반 DID를 통한 비대면 실명확인 서비스' (2020년 12월) 등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밝혀졌다.

'안면인식 비대면 계좌개설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해당 서비스가 처음 지정된 시기는 지난해 2월이다. 당시 KB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이 금융실명거래법상 특례를 받았다. 하지만 하나은행은 똑같은 서비스 명칭과 특례 내용으로 지난해 4월 지정받아 서비스를 출시했다. 

당국의 집계 방식의 문제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보험 간편가입/해지 프로세스(스위치보험)'은 2019년 4월 레이니스트보험서비스가 처음 지정받았는데, 같은 해 11월 또다시 지정받았다고 집계됐다. 2019년 12월 지정받은 카사의 '분산원장 기반 부동산 유동화 유통 플랫폼'은 같은 날짜에 2건이 올라왔다. 정작 1개 서비스이지만 각각 2개로 늘려 당국의 '지정 건수' 증가에 기여한 꼴이다.

금융위는 3년 동안 중복 서비스 집계를 통해 규제 개혁에 앞장서는 이미지를 쌓았다. 2019년 4월 1일부터 시행된 혁신금융서비스는 최종구(임기 2017년 7월~2019년 9월), 은성수(2019년 9월~2021년 8월) 전 위원장, 고승범(2021년 8월~) 현 위원장까지 3명의 금융위원장이 재임하는 동안 대대적인 홍보 주제로만 활용됐다.

혁신금융서비스는 금융혁신지원특별법에 의거,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등 당국 수장들이 참여하는 혁신금융심사위원회(심사위)가 심사를 맡는다. 심사위는 법령에 명시된 '기존 금융서비스와 비교 시 충분히 혁신적인지 여부', '금융소비자 편익이 증대되는지 여부', '금융서비스의 범위 및 업무방법이 구체적이며 사업계획이 타당하고 건전한지 여부', '금융소비자 보호 및 위험 관리 방안 등이 충분한지 여부' 등을 고려해야 한다.
 

자료사진 [그래픽=이코노믹데일리, 아주경제]

◆금융위 자화자찬에 일갈…전문가 "해체가 정답" 

최초 등록자에만 혁신금융 간판, 규제 유예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여전히 다수의 동일·유사한 서비스들은 당국 심사대를 무리 없이 통과하고 있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대표적인 보여주기식(전시) 행정"이라고 지적 수위를 높인다.

금융위의 중복 집계가 도마 위에 오르자 당국 기능 상실을 우려하는 비판과 더불어 궁극적으로 금융위 폐지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금융권을 관장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금융위는 샌드박스가 핀테크(금융기술 업체)와 스타트업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며 성공을 자화자찬했지만 실상은 이름만 '혁신금융 사업'일 뿐, 정작 혁신은 없고 보여주기식으로 사업을 운영해 왔음이 증명됐다"고 일갈했다.

같은 당 소속 국회 가상자산특별위원장 윤창현 의원은 "금융규제 샌드박스는 핀테크 중심 금융혁신을 선도하는 핵심 제도"라고 평가하면서도 "해당 사업을 지정만 해놓고 방치하고 있는 현재의 운용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금융위 폐지 여부는 뜨거운 감자가 된 지 오래다. 이들은 2008년 출범 후 금융위가 동시에 권한을 쥔 금융정책 기능과 금융감독 기능을 명확하게 구분해 전문 기관에 위임해야 한다는 점을 꼬집는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민의힘이 집권 여당에 오르면서 여소(小)야대(大) 정국을 이뤄 관련법 개정 등 금융위 해체까지 수반될 사전 작업이 녹록지 않을 수 있으나, 여당과 정부가 의지가 분명하다면 오히려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에 무게를 싣는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야대'에 해당하는 더불어민주당은 기본적으로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다"며 "'여소' 여당이나 윤석열 정부가 금융위 폐지안을 제안할 경우 국회 정무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결사저지 하는 그림은 나오지 않을 것인데, 현 모습의 금융위는 폐지가 정답"이라"이라고 강조했다.

또 "샌드박스는 마치 휴전선의 철책에 일부러 구멍을 뚫은 것과 같기 때문에 더욱 철저히 감시, 감독할 필요가 있는데 현재 실태는 그렇지 않아 잘못된 일"이라고 일축했다.
 

제9대 금융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수년째 묵인하고도 '체면치레' 급급…차기 위원장 과제

반면 금융위는 체면 지키기에 급급한 양상이다. 본지 취재 직후인 지난 13일 금융위는 출입기자단에 "(보도 반박) 혁신금융서비스 '무더기 합격증 남발', '중복집계로 실적 부풀리기 등'의 지적은 사실이 아님을 알려드린다"는 내용의 문자와 설명자료를 게시했다.

취재 당시 "해결방안을 고민해 신임 장관(금융위원장)에게 직접 보고하겠다"는 책임자 해명을 공식적으로 "사실이 아니다"라고 뒤집은 것이다. 앞서 사의를 표명한 고승범 현 위원장이 아닌 차기 위원장에게 관련 문제와 해결방안 등을 보고한다는 당국 측 설명이 부연 돼야 하나, 보도 반박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는 논란만 가중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혁신금융서비스 전반에 관한 시정은 제9대 금융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전 예금보험공사 사장)이 풀어야 할 현안으로 지목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유사·중복 서비스가 100% 문제 있다고 볼 수 없지만 사업·서비스를 가장 처음 심사받는 사업자의 혁신 모멘텀(동력)을 위축시킬 수 있는 사례들을 살펴보겠다"며 "명확한 선정 기준에 대해서도 지속해서 고민해 (임명 시기 등을 고려해서) 신임 장관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술적 측면에서 특허까지 바라볼 수 있는 수준이라면 당연히 최초 지정 사업자만 서비스를 출시하는 것이 맞을 수 있다"며 "지적 사항들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해 해결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전했다. 

금융위는 전체 지정건(211건) 중 잠정 보류 등으로 분류된 '미출시' 85건에서 63건이 출시 준비 중으로, 나머지 22건에 대해 △출시 희박 10건 △출시 미정 10건 △중단 확정 2건 등으로 파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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