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 쉴새없이 들어오는 코로나19 의심증상 환자나 확진 환자들을 일일이 검사·격리 치료하다보면 어느새 보호장구를 착용한 얼굴과 몸에 땀이 줄줄 흐른다. 5중 방호 세트(마스크, 보호복, 장갑, 고글, 머리 캡)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에 뒤집어썼다. 마스크 착용 후 12시간이 지나면 코가 헐고 피부가 벗겨졌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지만 마스크와 보호장구를 벗을 수도 없다. 파 김치가 된 힘겨운 몸을 이끌고 음압병실을 드나들 때마다 보호장구와 방호복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한다. 식사는 번번이 거르기 일쑤다.
코로나 사태는 햇수로 3년을 넘겼지만, 여전히 진행중이다. 음압병동에 자리가 없어 응급실에서 하루 이상 체류하는 환자들을 치료하고, 응급처치를 하다 확진 환자로 판명이 나면, 전체가 코호트 되기도 한다. 전쟁같이 참혹한 상황 속에서 신체적·정신적으로 너무나 크나큰 피로와 스트레스,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다. 응급의료진을 바이러스마냥 피하는 시선, 의료진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통념도 견뎌야 한다. 하지만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최선을 다했지만 환자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을 때 느끼는 무력감이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기약없는 희망을 안고 오늘도 방호복을 입는다.
◆임기 중점 추진과제는 노후화된 응급의료 시스템 재구축
"현직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코로나 팬데믹'의 혼란을 진료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응급실 의료진들은 코로나 확진 환자 케어와 일반 응급 환자 진료까지 하면서 그야말로 번아웃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응급의료진 모두가 힘들다 내색하지 않고 진료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정말 고맙고 자긍심을 느낍니다. 응급의료진이 열심히 일하는 만큼 인정받고, 적절한 환경에서 진료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정책개발과 교육 등을 통해 지원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최성혁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은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감염병 예방과 응급의료체계는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며 "응급의료인력 부족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노후화된 응급의료시스템을 다시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있는 의심환자들 가운데 예기치 않게 확진자가 나오면 의료진 감염이나 격리로 이어지면서 응급실 유지가 어렵게 된다.
응급실로 실려온 환자가 몇 시간 동안 입실조차 못하는 일도 있고 받아주는 응급실이 없어 여러 병원 응급실을 전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느 대학병원의 경우 코로나 사태로 병상이 부족해서 중증 응급환자들이 응급실로 들어오지 못한 채 아예 주차장에서 심폐소생술을 받는 상황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응급환자들이 앰뷸런스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모두 구급차 안에서 응급처치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환자 수용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한 것인데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병상과 의료진 부족은 생각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땜질식 처방”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최 이사장은 "확진자 치료 위주의 정부 정책에 응급의료체계가 과부하 상태이므로 지역사회 의료자원에 따라 중증환자와 경증환자를 각각 치료할 병원 등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뒤 "이제는 종합병원 응급실이나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기관 등에서도 일반 경·중증 환자들을 치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이사장은 "이를 위해 응급의료 플랫폼 구축이 필요한데, 응급의료 관련 보건복지부 데이터와 소방방재청의 데이터 일원화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 이사장은 “기관마다 이해관계로 얽혀 있지만 응급의료는 공공의료이기에 환자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며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며 방법을 모색중”이라고 밝혔다.
최 이사장은 현재의 위기를 모면할 단기적인 대책보다는 장기적인 계획 아래 올바른 지향점으로 함께 바꿔 나아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최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대한응급의학회 대의원 총회에서 제11대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올해 1월부터 2년이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응급의료서비스 향상과 응급의료 및 재난체계 구축을 위해 1989년 설립된 학회로 국내 응급의학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최 이사장은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취득했으며 대한외상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응급의학회에서 보험이사, 섭외이사, 교육이사, 간행이사, 학술 이사 등을 두루 지내며 학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현재 대한쇼크연구회 회장, 외상술기교육연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여전히 부족한 응급의료진…미래 불안감 해소 선행돼야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응급실 이외에는 야간이나 주말에 방문할 수 있는 의료기관 자체가 거의 없다.
최 이사장은 "늦은 시간대 경증 환자를 담당하는 응급클리닉이 있다면 응급의료 환자 분산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미국의 어전트케어(urgent care) 클리닉을 좋은 예로 꼽았다. 이곳은 일반 진료시설과 병원 응급실의 중간쯤 되는 시스템으로 늦은 시간 염좌 부상, 감기 등 일반 경증 환자들을 진료한다. 현재 미국 내에서 약 9000곳 넘는 어전트케어 클리닉이 운영중인데, 이 효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이 36% 가량 줄었다는 통계도 나왔다.
의료 현장의 최전선인 응급실에서 일하는 응급전문의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응급환자는 중증 여부를 사전에 알기 어렵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모든 응급환자를 응급의학 전문의가 보는 것이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 가장 적절하다는 게 최 이사장의 생각이다.
응급의학과는 업무강도가 높고 환경 또한 열악하다는 이유로 한동안 전공의들이 기피했지만, 응급의료체계 발전에 보건의료계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어지면서 인력난이 점차 해소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응급의료현장이 재난 상황을 방불케하면서 올해는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이 떨어졌다. 2022년도 응급의학과 전공의 모집 결과, 정원은 179명이지만 지원자는 151명으로 28명이 부족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전례가 없는 전공의 추가 모집을 발표했다.
현재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의 인력규정에는 권역응급의료센터 이외에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기관에는 응급의학 전문의를 반드시 둬야 하는 규정이 없어 실제 지역 응급의료현장에는 응급의학 전문의가 없는 채로 응급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병원들이 상당수다.
최 이사장은 한국에도 어전트케어 클리닉이 활성화되면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진로 선택의 폭도 넓어질 뿐 아니라 지역과 권역 응급의료센터 역시 일하기 수월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응급의학 전문의의 응급진료에 대한 수가 등 적절한 보상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응급실 폭력 근절해야…회원 소통으로 응급의료정책 풀어갈 것
응급실에서 발생하는 의료진에 대한 폭력은 그 피해가 피해자에 그치지 않고 그 의료진이 담당하던 다른 환자들의 생명마저 위협하는 중대범죄다. 최근에는 사회적 인식도 바뀌고 안전요원도 배치되면서 응급실 내 폭력 발생은 많이 줄었다.
최 이사장은 "응급실에서 경미한 폭력과 폭언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해도 일단 폭력·폭언이 발생하면 정상적인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법의 적용과 시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지역응급의료기관에는 아직 안전요원이 없어 애로를 겪고 있다. 모든 의료기관 응급실에 안전요원을 배치할 수 있도록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응급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응급의료진의 부담이 크고, 적극적인 치료가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사회적 요구가 증가하면서 응급의료 질을 높이는 성장통의 하나로 본다고 했다.
최 이사장은 “현재는 법적인 문제와 적정진료가 충돌하고 있다”면서 “환자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또 의료지침, 임상지침을 정확하게 지키면 응급의료진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관련 지침을 학회 차원에서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최 이사장은 임기 내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응급의료기반을 마련해 응급의학의 미래기반을 다지는 데 주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미래응급의료 TFT를 조직, 응급의료와 관련한 데이터를 확보해 이를 중심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학회 연구 정책을 개발하는 한편, 전공의와 전문의 수련과 교육, 윤리에 관한 다양한 과제를 수행해 응급의학 선진화를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최 이사장은 대한응급의학회 내 시급한 현안 해결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회원 간 원활한 소통이라고 강조했다.
“학회 구성원이 다양해 각자 입장도 다르지만, 회원들이 결속을 다지고 협력해야 학회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회원들을 직접 찾아가 만나면서 이야기도 듣고, 똘똘 뭉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 된 힘으로 당면한 응급의료정책들을 잘 풀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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