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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경제

[주진의 인사이드아웃] 이익공유제와 공동선경제

주진 생활경제부 부장 2021-01-20 11:12:21

코로나19로 극심해진 소득양극화…중산층 붕괴·저소득층 급증

여당이 빼든 '이익공유제', 징벌적 '부유세' 오해…기업들의 자발적 참여 이끌어내기 어려워

코로나 이후 경제공식 바뀌어야…위기 극복을 위한 우리 모두의 경제, 공동선 경제로

[사진=인터넷]

세계는 지금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대혼란을 겪고 있다.

부자들은 더 부유해지고, 중산층이 줄어들고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은 급증하면서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의 골은 더 깊어졌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19가 터지자 "치명적인 불평등이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불과 1년 만에 현실이 됐다.

세계은행(WB)은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하루 생계비가 1.9달러 이하인 세계 극빈층 비율이 올해 7.5%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으나, 코로나19 여파가 최악으로 치달을 경우 9.4%까지 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해 취업자 수는 1998년 이후 22년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하는 등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특수고용직나 프리랜서, 임시·일용직 등 소득 하위계층의 근로‧사업 소득은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자산을 가진 계층은 더 많은 소득을 갖게 되는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빗대 ‘일거지’,‘벼락거지’ 등 신조어까지 나왔다.

◆ 여당이 빼든 ‘이익공유제’, “방향은 맞지만 순서가 틀렸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익공유제’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오히려 호황을 누린 계층이 저소득층과 이익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불평등 해소 태스크포스(TF) 단장인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정글 같은 무한경쟁, 약육강식, 승자독식 사회를 공정과 연대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내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세계 도처에서 불평등 심화를 방치했다가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사회구성원간 대립과 갈등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강조했다.

홍 의장은 “외국·국내 기업의 사례 조사와 분석을 통해 사회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모델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어느 정도 (방안이) 숙성되면 노동계를 포함한 경제·사회 주체들과 함께 사회적 대화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당의 정책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방향은 옳다. 하지만 일을 추진하는 순서가 바뀌었다. 이익공유제를 실행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한 축이자 핵심당사자인 기업의 입장을 듣고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먼저여야 한다.

'사면론'을 꺼내들었다가 군색한 처지에 몰린 이낙연 당 대표가 내놓은 전환용 '깜짝 카드'라는 얘기까지 회자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익공유제를 제안하기 전에 이 대표가 기업인,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하는 자리라도 마련했다면 어땠을까.

핵심 주체들간 공론화 과정이 생략된 일방독주식 정책은 공감과 추진력을 얻기도, 실효성을 담보하기도 어렵다. 이명박정부의 동반성장위원회가 내놓은 초과이익공유제(협력이익공유제)나 박근혜정부 때 농어촌상생협력기금으로 그럴싸하게 이름이 바뀐 기업소득환류세제 역시 '기업 쥐어짜기'라는 비판 속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사진=인터넷]

2006년 참여정부 당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재계, 노조, 시민사회를 만나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내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김 의장이 말한 '한국판 뉴딜'은 사회적 합의였다. 예를 들면 재벌들의 숙원인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노동의 안정성도 유지하도록 협약하고, 이를 시민사회와 정부가 함께 보장하자는 거였다. 

김 의장은 '빅딜' 제안 열흘 만에 재계와의 라운드 미팅에서 9개 합의 사항을 발표했다. 재계는 투자 확대와 하청관행 개선, 취약계층 근로자 보호, 일자리 창출 등 투자활성화와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여당은 출자총액제한제 등 규제 개선,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경영권 보호 대책 마련 등 투자의 걸림돌 제거를 위해 힘쓰기로 했다.

그러나 오랜 갈등과 불신으로 구성원들 간의 합의 타결이 어려웠고, 뉴딜 제안을 둘러싼 당청 간 갈등까지 점화되면서 결실을 맺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김 의장이 뉴딜 행보를 지치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새로운 변화와 통합'을 갈망하는 국민적 지지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빅딜을 실현하려면 국민 공감대가 필요하다.

1997년 IMF 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은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를 다 함께 넘어야 한다는 국민적 연대의식에서 비롯됐다. 국민들은 장롱 속에 꼭꼭 숨겨뒀던 아이들의 돌반지, 서로의 손가락에 끼웠던 소중한 결혼 반지, 목걸이까지 아낌없이 내놓았다. 1998년 1월부터 2개월간 전국적으로 351만여 명이 참여해 약 227톤의 금을 모았다. 4가구당 1가구 꼴로 평균 65g(17.33돈)을 내놓은 셈이다.

'함께 극복하자'는 국민의 공감대가 '이익공유제'의 명분을 만들고, 기업의 선의(善義)를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럴 때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바라는 기업의 '자발적 참여'가 가능하다. 정부여당은 기업의 ’선의(善意)‘를 독려할 묘수를 찾길 바란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금은 기업의 선의 뒤에 숨는 후원자를 자처할 때가 아니라 재난 시기 사회연대를 이끌어낼 책임있는 정치 리더십을 발휘할 때"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정치권부터 나서서 월급을 삭감하는 고통 분담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사진=인터넷]


◆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어야”

코로나19 사태 역시 ‘모두 잘 살아야 나도 잘 살 수 있다’는 연대와 공존의 가치를 일깨웠다. 경제 역시 다르지 않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로 새로운 정의의 길을 제시했던 마이클 샌델 교수는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일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능력주의의 폭정: 과연 무엇이 공동선을 만드나?)’이다.

샌델 교수는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을 돕는 방안으로는 무마될 수 없다. 사다리 자체가 점점 오르지 못할 나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부의 편중과 극심한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가와 제도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크리스티안 펠버(Christian Felber) 역시 ‘공동선 경제’(The Economy for The Common Good·共同善 經濟)를 내세운다. 공동선 경제는 “소수의 부를 증식시키는 데 기여하는 대신 다수의 삶의 질을 높이도록 설계된 윤리적인 시장경제”를 지향한다.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펠버는 저서 '모든 것이 바뀐다'에서 공동선을 실현할 법률과 정책을 포함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했다. 재무적 대차대조표 대신 ‘공동선 대차대조표’를 통해 기업의 성과를 측정하고, 이를 통해 국가의 세금 혜택, 은행 대출 등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인센티브와 연계한다는 발상은 설득력이 있다.

또 상속에 제한을 둬서 ‘세대기금’을 조성한 후 아무것도 상속 받지 못한 채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민주적 지참금’(democratic dowry)’의 형태로 일정 금액을 나누어줄 것도 제안했다. 이는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말한 청년 기본자산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펠버의 공동선 경제는 2010년 오스트리아에서 12개 기업의 지지를 받으며 시작했는데 최근의 상황을 살펴보면 유럽을 중심으로 약 50개 나라, 2200개가 넘는 기업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니 짧은 역사를 감안할 때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역시 검토해볼만한 모델이다.

 

[사진=인터넷]


다만 이러한 공동선 경제 원리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경제의식에 일대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법과 제도로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공론화에 앞서 법·제도를 바꾸겠다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이익공유제 실현 방안으로 사회책임채권 발행이나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중이고, 참여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다양한 방안도 내놓을 계획이다.

여기에 부유세나 사회연대세 등 증세 논의도 불을 붙일 것으로 보인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압박 또는 관제 기부의 위험도 있고 이익 또는 손실의 산정도 형평성 시비 논란이 생길 여지가 크다"며 "부유세 또는 사회연대세라는 정공법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민주당은 소득·매출이 늘어난 부문에 사회적 기여를 의무화하고 이를 재원으로 어려운 부문을 지원하는 ‘코로나 극복을 위한 상생협력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가능성도 높다. 사회 구성원간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선의로 포장한 ‘갈라치기' 정치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사진=인터넷]



◆ '공정'·'공평'보다 '공동선'으로 '코로나 파고(波高)' 넘어가야

우울한 코로나 사태의 기나긴 터널을 벗어나려면 아직도 멀었다. 하지만 영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저소득층이  벼랑 끝에서 무너져내리고 있다.  '코로나 이익공유제'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할 이유다. 경제정의 실현을 위해 '공정하게'·'공평하게'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기일수록 '너와 나, 더불어'라는 '공동'의 의미를 먼저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지난 18일, 한겨레신문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날 오전 소낙눈이 쏟아지던 한파 속 서울역 광장에서 추위에 떨던 노숙인이 '커피 한잔을 사달라'며 한 중년 남성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남성은 자신이 입고 있던 긴 방한 점퍼를 벗어 노숙인에게 입혀주고 이내 주머니 속 장갑과 5만원짜리 지폐 한장을 건넨 뒤 저 멀리 사라졌다고. 불과 3분도 채 안되는 시간이었다니, 그는 자신의 것을 선뜻 내주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듯 하다.

좀더 가진 자가 약자의 손을 먼저 잡는 것. 이들이 연대성을 갖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고통은 나눠진다. 더 나은 세상, 더불어 사는 사람다운 세상, 행복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출발이기도 하다. 최소한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정의의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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