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의결권 3% 룰’(감사위원 분리선출 입법안)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상장회사가 감사위원 중 최소 한 명을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고 이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합산 주식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이었지만 본회의에서는 주주별 1인당 3%로 변경됐다. 최대주주 의결권 제한 시 투기자본 등이 기업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재계 목소리를 일부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사내이사 감사 선임 시에는 ‘합산 3%’가 그대로 적용되면서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3%룰은 기업 총수의 잘못된 결정을 견제하고 전횡을 막는다는 취지를 내포하고 있다. 긍정적 측면이 존재하지만 근본적으로는 ‘1주 1의결권’이라는 상법상 주주 평등권을 무력화 시키는 행위다. 또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자산을 투입하는 만큼 헌법이 규정한 재산권을 침해하는 연장선이다.
◆'트로이 목마' 만드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이러한 기본 원칙이 깨지면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단연 ‘꼼수’다. 예를 들면 투기자본이 특정 기업 지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여러 주체를 이용하는 경우다. 통상 일반주주는 감사위원을 제안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투기자본은 이사회에 핵심 인물을 심어놓고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의사결정을 하게 만들 수 있고, 중요 기술의 유출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3%룰은 투기세력의 '트라이 목마'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이 우려하는 부분도 이 대목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3%룰 도입이 불가피하다면 투기세력이 이사회 진출을 시도하는 경우만이라도 3% 제한 규정을 풀어달라고 제안했다. 예상치 못한 무차별 공격에 손 놓고 당할 수만은 없다는 뜻이었으나 묵살 당했다.
주요 지배주주가 개정안을 역이용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다수의 계열사과 특수관계자들을 동원하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국내 주요 그룹들은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복잡한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면서 시장과 소통도 강화하고 있다. 3%룰은 이러한 기조에 훼방을 놓는 격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공정거래법은 지주사의 자회사 주식 의무 보유 비율을 상장사는 20%, 비상장사는 40%로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 통과(각각 10%포인트 인상)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지배주주가 자회사에 대한 일정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 만큼 투기세력으로부터 역차별을 당하게 된다.
국내서는 삼성, 현대차 등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그룹들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상태다. 지주사 전환은 비가역성을 갖고 있어 그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기업 입장에선 그간 정부의 독려와 사회적 인식 등을 고려해 체제를 전환했지만 오히려 뒷통수를 맞는 꼴이다.
◆'정도경영' 노력 인정 못받는 상황
이번 상법 개정안 통과를 두고 기업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국내 주요 그룹 계열사 관계자는 “국내 그룹 총수들은 ‘재벌’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며 “그 의미가 단순히 돈만 밝히고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는 주체라는 뜻으로 점차 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편법 지분 확보, 편법 승계, 편법 경영 등에 대해서는 질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면서도 “사회 인식이 바뀌면서 각 그룹 총수들도 ‘정도경영’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고 변화하려는 노력은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을 옥죄는 법안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평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는 것이 정답이라는 극단적 주장도 제기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의결권을 제한하는 자체부터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그룹 지배구조 핵심은 이사회이며 이사회에 산정된 안건 찬반 여부는 의결권으로부터 나오는 만큼 상법 개정안은 결국 지배구조를 흔들겠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기업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상황별 예외 조항이라도 포함해야 한다”며 “무조건 기업을 때리는 행위는 그 누구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고 기업들도 국내서 활동을 제한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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