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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판 흔드는 박정호의 빅피처]SKT, 자회사 쪼개고 합치고…하이닉스에 초점 맞춰진 중간지주

이성규 기자 2020-12-08 06:13:00

박 부회장 승진, SK그룹 지배구조 개편 속도 전망

자회사 IPO 줄이어…하이닉스 지분 인수에 활용될 듯

지주사, 기업가치 제고 한계…최태원 지배력은 강화

[SK텔레콤 본사. 사진=SK텔레콤]

[데일리동방] SK그룹이 연말 정기 인사를 통해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암시하고 있다. 주주가치 제고와 동시에 ESG 경영 등 사회적 가치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그 속도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최종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남는다. ‘지주사의 무덤’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중간 지주사 전환을 시도하는 SK텔레콤 앞에 놓인 과제는 그 무게가 상당하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 선봉에 있는 박정호 부회장의 역할은 더 막중해졌다. 박 부회장이 이 난제를 어떻게 돌파해나갈지 관심이 쏠린다. [편집자]

기업가치 제고 ‘홀릭’에 빠진 SK텔레콤이 중간지주 전환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가치 제고’와 ‘지주사’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만년 저평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지주사 숙명’이 억누르는 탓이다. SK텔레콤이 향후 이 불문율을 깨지 못하면 최태원 회장의 그룹 지배력에만 몰두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지난 3일 SK그룹은 정기 인사를 통해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SK하이닉스 부회장을 겸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SK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SK그룹 지배구조 개편은 SK텔레콤 자회사 기업공개(IPO)로부터 출발한다. 이 과정에서 SK텔레콤은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뉘고 중간지주 체제로 전환한다.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 시나리오는 수년 전부터 거론됐다. 지난해 초 박 부회장은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지만 불과 몇 달 되지 않아 “100% 달성한다고 보장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한발 물러섰다.

당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회사 상장 추진 등에 대한 뚜렷한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SK와 SK텔레콤 합병을 두고 박 부회장이 양측 주주 동의를 충분히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가 성장을 위한 움직임이 강해지는 가운데 양사에 대해 누구보다도 정통한 박 부회장이 직접 진두지휘에 나선 것이다. 박 부회장은 취임 이전부터 SK하이닉스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어 주주들 신임도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ADT캡스-인포섹 합병·티맵모빌리티 분할···자회사 IPO 위한 정지작업 중

현재 SK텔레콤은 원스토어를 시작으로 여타 자회사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ADT캡스와 SK인포섹 합병을 발표했다. 상장 전 몸집불리기에 나서는 등 기업가치 제고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앞서 ADT캡스 인수는 물론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합병도 박 부회장 작품이다. SK텔레콤이 시대에 맞춰 변화할 수 있었던 이유다.

오는 29일에는 티맵모빌리티가 공식 출범한다. 박 부회장이 추진 중인 탈(脫)통신 사업 중에서도 가장 주력하던 분야다. 티맵모빌리티 분사 역시 모빌리티 사업 강화와 함께 자회사 IPO와도 연결되는 부문이다.

SK텔레콤이 자회사 상장을 통해 끌어 모은 자금은 SK하이닉스 지분 추가 확보에 쓰일 것으로 관측된다.
 

[SK텔레콤 지배구조. 사진=금융감독원 전자공시]

현행법 기준 지주사는 자회사 지분을 일정 수준(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이상 보유해야 한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상장사 30%, 비상장사 50%)이 통과되면 그 기준이 높아진다. 설령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아도 승승장구하는 SK하이닉스 가치가 매력적인 탓에 지분율을 높일 유인이 생긴다.

현재 SK그룹 지배구조는 ‘SK㈜-SK텔레콤-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지주사인 SK 손자회사인 탓에 인수합병(M&A) 시 제약이 따른다. SK텔레콤이 중간지주사로 전환하면 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SK텔레콤 자회사 상장 가치를 20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지분 10%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8조원(12월 3일 종가 기준)이 넘는 자금이 필요하다. 상당히 부담이 되는 규모지만 SK텔레콤의 연간 4조원이 넘는 영업활동현금흐름과 2조원가량의 현금성자산, 자회사 상장에 따른 자금 유입(구주 매출 기준) 등을 고려하면 재무구조에 큰 위협은 되지 않을 전망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2021년을 시작으로 SK텔레콤 자회사들이 줄줄이 상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IPO를 통해 끌어 모은 자금을 SK하이닉스 추가 지분 확보에 쓰는 등 지배구조 개편이 마무리되는 단계는 2022년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SKT 중간지주, 저평가 지주사 숙명 피할까

현 상황만으로 보면 SK텔레콤의 ‘중간지주 전환’과 ‘기업가치 제고’는 순탄히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두 단어는 지극히 상반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그룹 지주사 대부분은 장부에 기재된 자산가치가 시장에 반영되지 않는다. 주당순자산비율(PBR) 1배를 밑도는 경우가 허다하다. SK텔레콤의 중간지주 전환은 만년 저평가인 ‘지주사 숙명’을 극복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가는 격이다.

지주사가 저평가 받는 것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지목된다. 지주사의 자회사 지분율이 낮아 배당수익이 적다는 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신사업 발굴이 어렵다는 점이다. 사업지주사가 순수지주사 대비 높은 가치를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었던 SK C&C가 SK를 지배하는 ‘옥상옥’ 구조로 돼 있었다. 양사 합병을 통해 SK가 출범하면서 최태원 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높일 수 있었던 배경도 사업지주사인 SK C&C 덕분이었다.

2000년대 들어 지주사 체제는 지분과 재무 레버리지를 일으키기에 좋은 지배구조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현금흐름 창출력 한계라는 근본적 문제가 불거지고 그룹 총수의 지도력 부재라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결국 지주사 체제는 총수의 지배력 확보와 재벌들의 승계 수단에 불과하다는 과격한 비판도 나오기 시작했다.

SK텔레콤이 중간지주 전환을 통해 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하고 이를 기반으로 그룹의 사업구조를 탈바꿈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SK텔레콤 역시 지주사 숙명을 극복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SK텔레콤은 기업분할을 통해 중간지주로 전환하면 이후 SK텔레콤 투자회사와 SK가 합병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주사를 지배하고 해당 지주사는 수많은 자회사를 직접 거느리는 형태로 변한다. 현재 SK는 사업형 지주사이며 SK텔레콤 투자회사는 순수지주사가 될 전망이다. 합병 시 시장가치를 고려하면 SK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SK텔레콤 주주를 설득해야 하는 만큼 SK텔레콤의 중간지주 전환은 그룹 지배구조 개편 완성을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국내 지주사들은 저평가 문제로 투자 메리트가 낮은 편”이라며 “그룹 총수 입장에서는 지분 가치보다 지분율 등 지배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투자자와 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SK바이오팜 상장이 SK 시장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던 만큼 SK텔레콤이 자회사 상장과 지주전환 등을 통해 어떻게 ‘지주사 숙명’을 극복할지 여부가 관전포인트”라고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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