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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LG혼맥]② 사통팔달 ‘재계 혈연’ 만든 LG 창업주 구인회

이범종 기자 2020-09-08 04:33:00

창업주 시절 삼성家와 ‘재벌 혼맥’ 시작

9자녀 혼인, 경영하듯 꼼꼼히 챙겨

 

1999년 고(故) 구자경 명예회장(사진 가운데 줄 왼쪽에서 두 번째) 75세 생일 때 찍은 가족사진. 구 명예회장 오른쪽이 부인 고 하정임 여사다. 뒷줄 왼쪽부터 3남 구본준 LG그룹 고문, 2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맏사위 고 김화중 씨, 장녀 구훤미 씨, 셋째 며느리 김은미 씨, 차녀 구미정 씨, 장남 고 구본무 LG 회장, 첫째 며느리 김영식 씨, 둘째 며느리 차경숙 씨다. 오른쪽 끝은 둘째 사위 최병민 깨끗한나라 회장, 그 왼쪽은 4남 구본식 LT그룹 회장과 넷째 며느리 조경아 씨다. [사진=LG 제공]

 
[데일리동방] “우리도 앞으로 전자 산업을 하려고 합니다.” 1968년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던진 이 한 마디에 차갑게 돌아섰다. 두 사람은 지수보통학교 동창이며, 창업 초기 동업도 했던 재벌 동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인회 회장이 서운함을 느낀 것은 친구이자 동업자의 배신(?) 때문만은 아니다. 구 회장이 셋째 아들을 장가 보낸 사돈 집안이었기 때문이다.

인화단결(人和團結) 가훈으로 기업을 일군 LG가(家)는 4대째 내려오면서 여러 그룹으로 계열 분리가 됐지만 현재 동종업종에서 경쟁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 사돈의 이 한마디는 LG가 입장에서 수용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LG가는 삼성뿐 아니라 여러 정·재계 집안과 혼인으로 단결의 범위를 넓혔다. 재벌 1세대가 탄생하기 시작한 압축성장기에 맺은 방대한 혼맥은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다산 덕에 가능했다.

◆구씨-허씨 동업·겹사돈으로 凡LG

방대한 LG 혼맥의 시초는 범LG 집안인 허씨 가문이다. 두 집안 인연은 창업주 구인회 회장 8대조 구반 공이 진주의 만석꾼 허씨 집안에 장가 가면서 시작됐다. 이후 구 회장은 14살이던 1921년 이웃집 허만식씨 장녀 허을수씨와 결혼했다.

구씨와 허씨는 이후 겹사돈을 맺으며 더욱 각별해졌다. 구 회장 장인 허만식씨 6촌 허만정씨가 셋째 아들 허준구씨를 데리고 구 회장을 찾으면서 동업자 관계가 됐다. 이때가 1946년이다. 허만정 씨는 사업 자금을 내놓으며 아들의 경영수업을 부탁했다. 허준구씨는 구인회 회장 첫째 동생 구철회씨 맏사위였다. 허준구씨는 이후 LG건설과 LG전선 회장, 부회장을 지내며 인연을 이어갔다. 허창수 GS 회장을 포함한 여러 아들도 LG 경영에 깊이 참여했다.

◆6남 4녀, 방대한 혼맥의 시작

구 회장은 1969년 눈 감기 전까지 자식들의 혼사를 주도하며 기업가와 은행가, 판사 등 각계 고위층 사돈과 함께 재계 혼맥도 중심에 올라섰다. LG가 명문가와 촘촘히 인연을 맺은 배경엔 다산도 한몫 했다. 구 회장은 허을수씨와의 슬하에 6남 4녀를 두었다.

사돈은 대부분이 사업가 집안이다. 장남 고(故) 구자경 전 명예회장은 17세때인 1942년 경남 생가와 가까운 대곡면 원곡리 대지주 하순봉씨 장녀 하정임씨와 혼인했다. 구인회 회장이 사업의 틀을 잡지 못하고 고생하던 시기였다. 장남의 혼사를 찾는 기준은 집에서 가까운 곳일 수밖에 없었다.

사업 수완이 혼사에 반영되기 시작한 때는 둘째 아들 고 구자승 전 반도상사(LG상사) 사장부터다. 그는 한국전쟁 피난 시절인 1956년 부산에서 금성방직 전무였던 홍재선씨 딸 홍승해씨와 결혼했다. 선을 본 뒤 4개월만이었다. 전부터 알고 지낸 구 회장과 홍재선씨는 이미 사돈 맺기로 합의한 상황이었다. 훗날 홍씨는 전국경제인연합회장과 쌍용양회 회장을 지냈다.

허씨를 제외한 LG의 재계 혼맥 상징은 셋째 아들이 세웠다. 구자학 아워홈 회장은 1957년 고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 차녀 이숙희씨와 결혼했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가기 직전이었다. 당시 재계에서 정상을 다투던 두 집안 간 혼인은 일종의 ‘결혼 동맹’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후 구자학 회장은 1964년 제일제당(현 CJ) 기획부장으로 삼성에 입사했다. 삼성이 소유한 동양TV방송 이사와 호텔신라 대표이사,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을 지내고 본가로 돌아왔다.
 

1957년 구인회 LG 창업 회장 3남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 차녀 이숙희씨 결혼사진[사진=LG 제공]

◆사돈인 삼성 창업주와 갈등도

LG와 삼성의 인연은 두 창업주의 어린 시절 시작됐다.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이병철 회장은 아버지가 세운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다. 이후 시집 간 둘째 누나를 따라 진주로 이사가면서 훗날 사돈이자 라이벌인 구인회 회장을 만난다.

1922년 지수보통학교에서 만난 두 사람은 6개월 간 같은 반 학우로 지냈다. 둘 다 3학년이었지만 구 회장이 15살, 이 회장이 12살이었다.

길지 않은 학연이지만 이후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세우면서 ‘경영 1세대’ 동기가 됐다. 구인회 회장은 1951년 플라스틱 사업을 결정하면서 삼성물산이 일본에서 들여온 ‘합성수지총서’를 공부했다.

이 회장은 구 회장에게 동업을 몇 차례 제안하기도 했다. 공동 출자해 원당 수입으로 설탕을 만들자는 말에 구 회장은 “생산업에만 전념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이 사돈이 된 뒤에는 이 회장이 “상업 방송을 하자”는 제안을 재차 내놨다.

당시 구 회장은 라디오에 이어 TV도 만들 예정이었다. ‘부산일보’도 경영하고 있어서 미디어 사업에 관심이 컸다. 두 기업은 1964년 라디오서울과 동양방송(TBC)를 세워 방송 사업에 공동 진출했다. 출자는 물론 경영진도 5대 5로 맞췄다.

문제는 화학적 결합이었다. 양사 출신 임원 간 알력 싸움이 반복되면서 라디오는 삼성, TV 방송은 LG 쪽이 가져가는 쪽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사업 정산은 지지부진했다.

결국 구 회장은 일본에 머물던 이 회장을 찾아갔다. 그는 TV방송도 삼성에 넘기기로 했다. 손주들이 컸을 때 할아버지들이 사업을 두고 싸웠다는 말을 듣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장사꾼의 숙명이 두 사람의 우정을 갈라놓았다. 이 회장의 전자 산업 진출 의사를 밝힌 이후 두 사람은 영영 화해하지 못했다.

[그래픽=김효곤]

◆혼맥도 경영처럼 주도한 창업주

삼성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자녀도 재계와 연을 이어갔다. 5남인 구자일 일양화학 회장은 ‘평범한 사업가’로 알려진 김진수씨 딸 김청자씨와 혼인했다. 그는 일찌감치 사업 면에서 LG로부터 독립해 자기 사업을 키웠다.

둘째 딸 구자혜씨는 이재연 아시안스타 회장과 결혼했다. 이 회장은 고 이재준 대림그룹 회장의 막내 동생이다. 이재연 회장은 럭키화학 상무로 LG에 입사해 희성산업 사장과 금성통신 사장, 금성사 사장을 거쳐 LG카드 부회장을 지냈다.

셋째 딸 구자영씨는 제일은행장이던 이보형씨 아들 재원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구인회 회장 막내 처남 허윤구씨 아들인 허남목씨 소개로 만난 뒤 20일만에 ‘초스피드’로 결혼했다. 이씨는 자신 소유의 일성제지 회장을 지냈지만 일성제지는 98년 신호제지에 합병됐다.

관가와 법조계 혼맥도 두루 갖췄지만 가슴 아픈 사별도 있었다. 장녀 구양세씨는 15세 때 경남 남해군수를 지낸 박해주씨 아들 박진동씨에게 시집 갔다. 당시 진주고보 학생이던 박씨는 해방 후 좌우익투쟁으로 일어난 학병동맹본부 피습 사건으로 눈을 감았다.

4녀인 막내딸 구순자씨는 류헌열 전 대전지방법원장 아들 류지민 검사와 결혼했다. 구 회장은 막내 사위를 아껴 골프장에 자주 데리고 다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류씨는 40대 나이에 타계했다.

4남인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심계원(현 감사원) 심계관과 국방부 차관을 지낸 이흥배씨 딸 의숙씨와 결혼했다. 둘째 아들 쪽 사돈인 홍재선씨 도움이 컸다. 홍씨는 이미 사돈 관계였던 이흥배씨를 찾아가 겹사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흥배씨는 1964년 구인회 회장이 운영하던 동양텔레비전 사장으로 들어갔지만 삼성과의 동업 파기로 물러났다. 그의 장남 이희종씨도 LG산전(현 LS산전) 사장과 부회장을 지내는 등 LG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아버지 개입 없는 혼사는 막내 아들(6남) 구자극 엑사이엔씨 회장뿐이다. 그는 구인회 회장 타계 후 조필대 이화여대 교수 딸 조아란씨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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