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전일 아시아나항공은 매각을 위한 본입찰을 마감했다. 막판에 대기업 그룹이 참여할 가능성도 점쳤지만 이변은 없었다.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 애경그룹-스톤브릿지캐피탈 컨소시엄, KCGI-뱅커브릿지 컨소시엄이 이번 딜(deal)에 최종 참여했다.
매각주체인 금호산업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인수자들이 제시한 가격 등 정량평가는 물론 아시아나항공 정상화를 위한 정성평가를 통해 우선인수협상대상자를 정할 방침이다. 유찰 우려도 있었지만 연내 매각 가능성은 높아진 상황이다. 인수자들이 제시한 가격은 2조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이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IB 관계자는 “구주보다는 신주(유상증자) 인수에 배팅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거래 성사 이후에도 아시아나항공에 막대한 자금이 투여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아시아나항공 부채는 9조7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은 매년 6000억~7000억원 규모에 달하지만 막대한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채가 짓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신용등급도 점차 낮아지면서 조달금리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시장 조달 자체도 어려워졌다. 아시아나항공을 품에 안을 주인공은 우선적으로 재무구조 개선에 힘써야 한다.
정작 문제는 그 이후다. 포화된 국내 항공업계, 일본과의 관계 악화 등으로 수익성 제고가 쉽지 않은 탓이다. 일본과의 관계는 정치적 문제인 만큼 논외로 하더라도 국내 항공업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매각과 함께 저비용항공사(LCC)들이 공급축소를 검토하고 있는 만큼 업계 재편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항공업 특성상 고정비 부담이 높아 가동률을 낮춰 손실을 줄이기는 어렵다. 일본을 제외한 동남아 등 여타 지역에서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에어서울, 에어부산 등 LCC를 자회사로 두고 있어 대형항공사(FSC)로서의 이점도 제한적이다.
◆워렌 버핏은 왜 항공주에 투자했나
현 상황이 국내 항공업계 구조조정의 시작이라면 향후 업계 재편을 통한 수익성 회복이 가능할까.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는 지난 4월 미국 항공사인 델타항공 지분을 10% 넘게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2016년부터 사우스웨스트, 아메리칸, 유나이티드항공 등에도 투자했다.
버핏은 항공주 투자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1989년 US에어웨이 투자 실패 탓이다. 당시 미국에는 메이저 항공사만 10개 이상이었다. 2000년 이후 항공사들의 파산과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현재 빅4(델타, 사우스웨스트,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체제가 굳혀졌다.
업계 경쟁이 완화된 가운데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면서 빅4의 수익성은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항공사 주가는 시장 대비 언더퍼폼(underperform)했다. 저평가된 주식을 선호하는 버핏의 눈에 포착된 것이다.
사실 투자에 있어서 비용감소를 통한 수익성 개선은 기업가치 제고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구조적으로 이익을 늘릴 수 있는 요인이 필요하다. 버핏이 항공주 투자를 시작할 무렵 미국 주요 항공사들은 벌어들인 돈으로 공급을 크게 늘렸다. 시장은 항공업의 전형적 사이클(호황기 공급 증가)로 판단하면서 이후 수익성이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빅4는 점유율 확대를 위한 경쟁보다 공급조절에 집중했다. 늘어난 수익을 바탕으로 주주가치 제고에도 힘썼다. 그 결과 현재 미국 항공사 주가는 2016년을 저점으로 지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버핏은 ’경제적 해자’ 기업에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쉽게 말해 경쟁 업체들이 넘볼 수 없는 브랜드와 기술력 등을 보유한 곳이 그 대상이다. 버핏은 에너지, 운송 등 인프라산업에 대한 혜안도 상당하다. 업계 전체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구조조정 등 진행된 후 경쟁이 완화된다면 과감히 투자에 나서거나 지분을 매각하기도 한다. 버핏의 철도 관련주 투자와 석유 관련 기업 지분 매각 등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다. 버핏의 항공주 투자는 결국 수익성 제고에 대한 확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워렌 버핏 시각에서 본 아시아나항공
만약 버핏이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가능했다면 이번 본입찰에 참전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NO’일 가능성이 크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미국과 우리나라 항공업 환경은 완전히 다르다”며 “미국 빅4는 국내선 비중이 80%를 넘고 각종 부가서비스 유료제 등을 도입하면서 수익성 제고를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국내 항공업은 이제 구조조정 시작이자 향후 이 과정에서 얼마의 자금이 투여될 지 불투명하다”며 “버핏이 빅4에 전부 투자하고 있는 만큼 사실상 미국에 하나의 항공사가 존재한다고 보면 국내 항공업계 환경과 더욱 차이가 난다”고 덧붙였다.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 주체가 에어부산과 에어서울 등 자회사를 매각할 가능성도 거론되는 이유다. 투하자본수익률(ROIC)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익성 제고보다는 부채 감축을 통한 이자비용 등 축소가 먼저다. 자회사 매각 등을 통해 유입되는 자금을 차환 혹은 새로운 서비스 도입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FSC인 만큼 LCC와의 차별화가 가능하다. 자회사 LCC 매각으로 관련 업계 경쟁도 완화될 수 있다. 이 또한 아시아나항공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다. 최종 인수자가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다.
이 연구원은 “시장 예상과 달리 입찰가격은 높은 편”이라며 “재무부담 축소 차원에서 보면 무리는 아니지만 국내 항공업 구조조정이 완료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수자들의 배팅은 과감했지만 버핏 입장에서는 현재 항공업에 대한 투자를 ‘무모한 싸움’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Copyright © 이코노믹데일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