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4일 오전 태국 ‘노보텔 방콕 임팩트’에서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11분간 단독으로 환담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양 정상은 한일관계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며 한·일 양국 관계의 현안은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의 환담은 즉흥적으로 진행됐다. 회의 시작 전 인도네시아·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정상 등과 환담을 마친 문 대통령이 아베 총리를 발견하고 자신의 옆자리로 데려가 환담했다.
한·일 관계는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 이후 경색됐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이 전범기업 신일본제철(現 신일철주금)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자 올해 7월 무역 보복을 시작했다. 반도체 핵심 소재(고순도 불화수소·플루오린 폴리이미드·포토 레지스트) 수출 규제를 시작으로 8월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제외도 강행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대기업은 소재 국산화와 수입 국가 변경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학계에선 이번 갈등이 해소되더라도 소재 국산화를 멈춰서는 안된다는 경고가 나왔다.
일관된 불매운동으로 일본 지방은 한국인 관광객 수가 반토막났다. 일본정부관광국은 9월 자국을 방문한 한국인이 전년도 같은달보다 58.1% 줄어든 20만1200명이라고 발표했다. 일본 시코쿠(四國) 지역 에히메(愛媛)현은 현과 현내 공기업, 현 교육위원회 직원들게 사비 한국 여행을 권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직구에서 일본이 차지하던 비율도 줄고 있다. 통계청은 3분기 일본 제품 온라인 직접구매액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2.3%라고 4일 발표했다. 2분기 증가율 32%에서 급감한 수준이다.
한국 내 매장 방문객이 다시 늘어난 유니클로는 광고 의역으로 구설에 올랐다. 광고 속 여성이 “그렇게 오래 전 일은 기억 못 한다”고 말한 점을 두고 “80년 전 일을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번역해 한국의 식민지배 정당화 논란을 키웠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달 브리핑에서 강제징용 등 현안에 대해 한국의 현명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해 양국 관계 회복 전망을 어둡게 했다.
이날 형식은 깜짝 환담이었지만 대화 분위기는 이미 마련된 상황이었다.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을 계기로 아베 총리에게 문 대통령 친서를 전달했다. 친서에는 정상 간 대화가 늘 열려있다는 입장과 현안이 극복돼 양국 정상이 만났으면 좋겠다는 취지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1990년대 일본 특파원을 지낸 지일파 이 총리를 먼저 보내고 태풍 하기비스 피해를 위로했다. 이번 환담 때는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의 모친상을 다시 한 번 위로했다.
조국 장관 사태로 급락하던 문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 40%대를 회복했다. 연말까지 극적인 진전을 이끌어낼 경우 내년 총선은 물론 국정 동력 유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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