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 포토 레지스트(PR), 고순도 불산(HF) 등 3개 품목의 대 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했다. 이 품목들은 현재 일본이 각각 70∼90%의 점유율로 독과점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얼마나 타격을 입을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현재로선 전망이 엇갈린다.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기업에 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도 나오며, 중장기적으로 수혜를 볼 것이란 분석도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술기업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 제조업체들이 투입 소재를 일본 생산자에 많이 의존해서다.
무디스는 “한국의 수출규제 대상 품목인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에칭가스의 일본 의존도는 각각 94%, 92%, 44%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가신용등급은 ‘Aa2’를 유지하면서 "수출규제가 한국 제조업체 운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이번 반도체 수출 규제가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 확대에 타격을 줄 거란 분석도 나왔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 확대를 위해 하반기부터 EUV(극자외선) 라인의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공정에 사용되는 소재인 EUV용 포토 레지스트는 일본으로부터 전량 수입된다. 박유악 연구원은 "일본의 수출 제한으로 고객 확대를 목전에 둔 삼성 파운드리 부문의 영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이번 조치가 비메모리 반도체에 미칠 영향을 '부정적‘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전체적인 반도체 업황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거란 의견이 우세하다. 오히려 호재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이 규제한 수출 품목이 특정 소재에 한정돼 있어 국내 기업의 생산에는 차질이 없을 수도 있다.
도현우·박주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의 규제 대상 리지스트 관련 세부 품목 확인 결과 EUV(극자외선)용에 한정된 규제로 확인됐다"며 "EUV용 리지스트는 JSR, 신에츠화학 등 일본 기업만 생산이 가능하지만 아직 삼성전자 등은 EUV 공정을 도입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D램에서 주로 사용하는 리지스트는 ArF 이머전 노광장비용이고 3D낸드 공정에서 주로 사용하는 리지스트는 KrF 노광장비용인데, ArF 빛의 파장은 193nm이고 KrF 파장은 248nm"이라며 "일본은 193nm 미만 파장의 빛에 최적화한 리지스트만 규제했으니 이 둘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들 연구원은 오히려 일본 기업들의 피해에 대한 시장 우려가 확산되는 것으로 진단했다. 중장기 관점에서 일본의 핵심 소재 수출 규제가 국내 업체에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거란 분석도 나왔다.
김양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반도체·디스플레이는 공급 과잉 국면에 놓여 있어 제조사들은 이번 이슈를 계기로 과잉 재고를 소진하는 한편, 규제로 인해 발생한 생산 차질을 빌미로 향후 일본 업체에 대한 가격 협상력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사들이 향후 국내산 소재의 비중을 늘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내 소재 업체들도 반사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디스도 수출규제가 한국 제조업체 운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확대되진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
무디스는 "한국 기업들은 수출규제 대상 소재의 주 소비자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메모리칩과 디스플레이 패널의 핵심 공급자"라며 "이들이 생산에 지장을 받으면 글로벌 공급 체인과 일본 업체를 포함한 기술·전자 기업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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