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부총리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를 명백한 경제보복으로 규정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포함해 상응하는 조치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의 발언은 반도체 자급 능력에 대한 자신감보다는 거미줄처럼 엮인 다자간 무역 구조를 염두에 둔 반응으로 풀이된다. 이날부터 일본은 한국의 주력 수출 제품인 반도체·스마트폰·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자국산 소재·부품 수출 규제를 시작한다. 아베 일본 총리는 한국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며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강화 이유를 밝혔다. 사실상 보복임을 인정한 셈이다. 앞서 한국 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전범 기업의 배상 판결을 잇따라 내놨다.
현지 언론은 주요 고객사인 한국 기업이 대체제를 찾아내 장기적으로 일본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아베가 정권 유지를 위해 장기적인 국익을 훼손하려 든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당장 아쉬운 쪽은 한국이다. 1차 수출 규제 대상인 3개 품목은 유기EL 디스플레이 패널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소재인 포토 리지스트(감광제)와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세정제)다. 세계시장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점유율이 70~90%에 달하는 품목이다.
그럼에도 장기적으로 볼 때는 일본에 절대적으로 유리하지 않다. 현지 언론의 지적대로 한국 반도체 설비 투자 감소는 일본 내 다른 반도체 제조용 소재 수출 길을 좁히게 된다. 한국 기업이 만든 반도체를 일본 업체들이 컴퓨터 제조에 사용하는 점도 지적된다. 결국 양국 간 무역 싸움에 중국만 이득을 본다는 설명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를 예상해왔다며 재계와 소통 강화에 나섰다. 지난 2일과 3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홍 부총리는 각각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급박한 회동을 마친 홍 부총리가 일본을 향해 작심 발언을 날린 배경에는 메모리 1위 업체 삼성전자의 위치와 향후 전략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시에 따르면 1분기 삼성전자 D램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44%에 이른다.
홍 부총리의 ‘상응조치‘로는 메모리 반도체 수출 제한이 거론된다. 삼성과 LG 등 한국 기업 반도체를 사용해온 소니와 파나소닉은 물론, 일본 기업과 거래하는 전세계 업계로 파장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제사회에서 입장이 난처해질 국가는 일본이므로 이번 수출 규제 조치도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체감 수준이 높아질수록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거세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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