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개의 '형형색색' 돌들이 모여 전시장을 마치 기둥처럼 받쳐 들고 서 있다. 그러나 한 개의 검은색 돌기둥은 따로 떨어져 홀로 반짝이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25년을 조각가로 살며 마에스트로(maestro)라는 경칭을 얻었지만, 박은선(53) 작가는 늘 검은 돌 처럼 섞이지 못하고 홀로 빛나고 있다.
서울 성수동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더페이지갤러리는 대규모 전시공간 리뉴얼 후 첫 전시로 박은선 작가의 '숨 쉬는 돌의 시간' 전을 6월 30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10년 만에 한국에서 선보이는 개인전임과 동시에, 수년 만에 공개되는 신작들을 발표하는 자리이기에 큰 의미가 있다.
전시는 지난해와 올해 제작한 신작을 중심으로 대리석 조각작품 15점을 선보였다.
최근 더페이지갤러리에서 만난 박은선 작가는 "어제 간 것 같은데 이탈리아에서 산 세월이 벌써 25년이 흘렀다. 그 정도로 매일 지내면서 하루하루를 그냥 넘어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가족과 이웃들도 너무한다고 할 정도로 치밀하게 매일매일을 지내왔다"며 "(인종차별 때문에)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할 수도 있지만 저 스스로가 그룹 앞에 멀어져서 살아왔다. 그런 저의 인생의 표현으로 검은색을 빼놨다"고 입을 열었다.
자신을 검은색 작품으로 표현한 박은선 작가는 지난해 페이스북 운영을 그만두면서 실제의 자신이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것을 경계했다.
"성격이 못됐다. 가끔 어떤 분이 저를 굉장히 가정적이고 인자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페이스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거짓을 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남자로서 인자한 아빠로서 가정적인 남편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던 거다. 이런 강렬한 성격을 표현하고 싶었다."
전시 제목인 '숨 쉬는 돌의 시간'에서 보듯 박은선 작가의 작품에는 늘 깨짐과 틈이 있다. 그는 생명이 없는 자연석에 생명을 넣고 싶어서 깨고 숨통을 만들어 준거다.
박은선 작가는 "제 작품은 대부분이 파괴되고 깨져 있다. 거기서 저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어디에 빠지면 나만의 것이 들리고 나만의 것이 보인다" 며 "작품에서 깨진 틈을 통해서 비명이 들린다. 그 비명은 25년 동안 힘들었던 비명이다. 그래서 작품은 100%의 제 삶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작품의 깨짐은 숨통이고 이 숨통은 모든 작업에 우선한다. 즉 작품의 형태를 완성한 다음에 구멍을 뚫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깨서 돌에 숨통을 열어주고 숨통이 트인 돌들을 붙여 나간다. 박 작가는 이것을 두고 "나중에 깨면 거짓말"이라고 강조한다.
보통은 조각이라면 한 덩어리 안에서 형태를 찾아간다. 미켈란젤로(1475~ 1564·조각가) 시절부터 많은 사람이 똑같은 조각을 해왔고 박 작가도 그렇게 조각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우연히 '파괴의 맛'을 알아버렸다.
"한 개의 대리석이 가진 패턴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표현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망치를 들고 다 깨버렸다. 작품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깨고 나니까 기분이 좋았다. 다 파괴한 다음에 조립해 나가고 그랬을 때 제 모습이 완성됐다. 그것을 보면 (작품이) '나와 너무 닮았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돌을 깨고 부수기 시작했다."
10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선보이는 박은선 작가가 더페이지갤러리를 선택한 것은 무게가 1.2t이나 나가는 5m 길이의 돌기둥을 천장에 매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며 고대 그리스 신전의 기둥처럼 생긴 'infinite Column-Accretion' 시리즈가 쇠사슬에 의지한 채 천장에 매달려 있다.
박은선 작가는 "무게가 1200kg이다. 전에 여기에 와서 이 기둥을 매달기 위해서 무게가 1000kg이 안 된다고 거짓말을 했다"며 "보통 1000kg이 넘는다고 하면 사람들이 겁을 먹는다. 이 건물에서도 관리인들이 긴장하고 갤러리의 스텝들도 겁을 많이 먹었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작품은 기둥이지만 관람객들은 기둥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기둥이 놓인 공간을 본다. 적절하게 나뉘어 있는 공간에서 관람객들에게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박 작가가 더페이지갤러리를 선택한 두 분째 이유다.
"제 작업은 여백이 많이 필요로 한다. 기둥이 하나 놓여있으면 그 기둥이 많은 것을 받쳐준다. 받쳐주는 범위가 굉장히 넓다. 기둥 하나 때문에 주변에 놓여있는 것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기둥 하나 때문에 주변의 공간이 상상이 갈 정도로 보는 관람객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작품이 전시장에 서 있지 않고 매달려 있어 긴장감을 유발한 것은 작가의 25년간 처절한 이탈리아 생활의 투영이다.
박은선 작가는 "낭떠러지에 끝에 서 있었을 만큼 죽음에 가까웠던 위기가 몇 번 있었다. 그런 위기감을 거치면서 이런 작품이 완성됐다. 위기감이라든지 긴장감을 하루라도 놓치면 제 삶이 무너질 것 같은 생각이 지금도 든다"면서도 "이탈리아 시골에서 한국인 박은선이 세계 최고의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수억 원이 들어가는 스폰을 받아가면서 대도시에 작품을 설치할 정도가 됐다. 굉장한 성공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전형적인 B형 남자이고 나쁜 남자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박은선 작가는 나이 50대 중반인 지금도 작업장에 가면 마스크와 귀마개를 하고 먼지를 뒤집어쓴다.
때로는 아트페어나 비엔날레에서 다양한 재료들을 보고 돌 말고 다른 재료를 해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다음날 작업장에 가면 다시 돌을 깨고 있다.
그는 '아! 오늘도 내가 살아서 작업하는구나!'라고 말하는 박은선이 되고 싶어 한다.
이탈리아에서 25년을 조각가로 살며 마에스트로(maestro)라는 경칭을 얻었지만, 박은선(53) 작가는 늘 검은 돌 처럼 섞이지 못하고 홀로 빛나고 있다.
서울 성수동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더페이지갤러리는 대규모 전시공간 리뉴얼 후 첫 전시로 박은선 작가의 '숨 쉬는 돌의 시간' 전을 6월 30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10년 만에 한국에서 선보이는 개인전임과 동시에, 수년 만에 공개되는 신작들을 발표하는 자리이기에 큰 의미가 있다.
전시는 지난해와 올해 제작한 신작을 중심으로 대리석 조각작품 15점을 선보였다.
최근 더페이지갤러리에서 만난 박은선 작가는 "어제 간 것 같은데 이탈리아에서 산 세월이 벌써 25년이 흘렀다. 그 정도로 매일 지내면서 하루하루를 그냥 넘어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가족과 이웃들도 너무한다고 할 정도로 치밀하게 매일매일을 지내왔다"며 "(인종차별 때문에)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할 수도 있지만 저 스스로가 그룹 앞에 멀어져서 살아왔다. 그런 저의 인생의 표현으로 검은색을 빼놨다"고 입을 열었다.
전시 작품중에 'Accrescimento-infinite' 시리즈에서 하얀색, 빨간색, 갈색, 회색 등의 돌기둥 작품들은 한 그룹으로 모여 있고, 검은색 작품만 따로 떨어져 있다.
자신을 검은색 작품으로 표현한 박은선 작가는 지난해 페이스북 운영을 그만두면서 실제의 자신이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것을 경계했다.
"성격이 못됐다. 가끔 어떤 분이 저를 굉장히 가정적이고 인자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페이스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거짓을 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남자로서 인자한 아빠로서 가정적인 남편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던 거다. 이런 강렬한 성격을 표현하고 싶었다."
전시 제목인 '숨 쉬는 돌의 시간'에서 보듯 박은선 작가의 작품에는 늘 깨짐과 틈이 있다. 그는 생명이 없는 자연석에 생명을 넣고 싶어서 깨고 숨통을 만들어 준거다.
박은선 작가는 "제 작품은 대부분이 파괴되고 깨져 있다. 거기서 저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어디에 빠지면 나만의 것이 들리고 나만의 것이 보인다" 며 "작품에서 깨진 틈을 통해서 비명이 들린다. 그 비명은 25년 동안 힘들었던 비명이다. 그래서 작품은 100%의 제 삶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작품의 깨짐은 숨통이고 이 숨통은 모든 작업에 우선한다. 즉 작품의 형태를 완성한 다음에 구멍을 뚫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깨서 돌에 숨통을 열어주고 숨통이 트인 돌들을 붙여 나간다. 박 작가는 이것을 두고 "나중에 깨면 거짓말"이라고 강조한다.
보통은 조각이라면 한 덩어리 안에서 형태를 찾아간다. 미켈란젤로(1475~ 1564·조각가) 시절부터 많은 사람이 똑같은 조각을 해왔고 박 작가도 그렇게 조각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우연히 '파괴의 맛'을 알아버렸다.
"한 개의 대리석이 가진 패턴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표현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망치를 들고 다 깨버렸다. 작품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깨고 나니까 기분이 좋았다. 다 파괴한 다음에 조립해 나가고 그랬을 때 제 모습이 완성됐다. 그것을 보면 (작품이) '나와 너무 닮았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돌을 깨고 부수기 시작했다."
10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선보이는 박은선 작가가 더페이지갤러리를 선택한 것은 무게가 1.2t이나 나가는 5m 길이의 돌기둥을 천장에 매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며 고대 그리스 신전의 기둥처럼 생긴 'infinite Column-Accretion' 시리즈가 쇠사슬에 의지한 채 천장에 매달려 있다.
박은선 작가는 "무게가 1200kg이다. 전에 여기에 와서 이 기둥을 매달기 위해서 무게가 1000kg이 안 된다고 거짓말을 했다"며 "보통 1000kg이 넘는다고 하면 사람들이 겁을 먹는다. 이 건물에서도 관리인들이 긴장하고 갤러리의 스텝들도 겁을 많이 먹었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작품은 기둥이지만 관람객들은 기둥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기둥이 놓인 공간을 본다. 적절하게 나뉘어 있는 공간에서 관람객들에게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박 작가가 더페이지갤러리를 선택한 두 분째 이유다.
"제 작업은 여백이 많이 필요로 한다. 기둥이 하나 놓여있으면 그 기둥이 많은 것을 받쳐준다. 받쳐주는 범위가 굉장히 넓다. 기둥 하나 때문에 주변에 놓여있는 것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기둥 하나 때문에 주변의 공간이 상상이 갈 정도로 보는 관람객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작품이 전시장에 서 있지 않고 매달려 있어 긴장감을 유발한 것은 작가의 25년간 처절한 이탈리아 생활의 투영이다.
박은선 작가는 "낭떠러지에 끝에 서 있었을 만큼 죽음에 가까웠던 위기가 몇 번 있었다. 그런 위기감을 거치면서 이런 작품이 완성됐다. 위기감이라든지 긴장감을 하루라도 놓치면 제 삶이 무너질 것 같은 생각이 지금도 든다"면서도 "이탈리아 시골에서 한국인 박은선이 세계 최고의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수억 원이 들어가는 스폰을 받아가면서 대도시에 작품을 설치할 정도가 됐다. 굉장한 성공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전형적인 B형 남자이고 나쁜 남자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박은선 작가는 나이 50대 중반인 지금도 작업장에 가면 마스크와 귀마개를 하고 먼지를 뒤집어쓴다.
때로는 아트페어나 비엔날레에서 다양한 재료들을 보고 돌 말고 다른 재료를 해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다음날 작업장에 가면 다시 돌을 깨고 있다.
그는 '아! 오늘도 내가 살아서 작업하는구나!'라고 말하는 박은선이 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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