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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내 물건이라는 말로 상표까지 바꿀 수는 없다

한석진 기자 2026-02-26 15:45:55
서울의 한 루이비통 매장 [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명품 가방을 뜯어 다른 형태의 제품으로 만드는 이른바 ‘리폼’을 둘러싼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했다. 개인적 사용 목적의 변형·가공은 원칙적으로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사건은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내졌다.
 

이번 판결을 두고 “내 물건을 내가 고치는 것이 왜 문제냐”는 반응이 나온다. 감정의 차원에서는 이해가 간다. 부모가 입던 옷을 고쳐 자식에게 물려주는 일은 오래된 풍경이다. 그러나 법이 다루는 대상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시장 질서다. 상식은 소중하다. 다만 그 상식이 어디까지 통용되는지 따져보는 일은 더 중요하다.

 

상표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특정 사업자가 일정한 품질과 이미지를 담아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신뢰의 표지다. 소비자는 그 표지를 보고 출처를 짐작하고 품질을 기대한다. 상표법은 그 기대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기본 전제가 흔들리면, 시장은 혼탁해진다.
 

1심과 2심은 리폼 제품이 중고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고 일반 수요자가 출처를 오인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형태와 기능이 달라졌음에도 기존 상표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소비자는 여전히 그 제품을 원 브랜드의 산물로 인식할 수 있다. 상표의 출처 표시 기능과 품질 보증 기능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개인적 사용 목적이라는 전제를 강조했다. 유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침해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문제는 현실이다. 개인적 사용과 사실상의 유통은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주문 제작이라는 형식을 갖추었더라도 결과물이 거래의 장으로 흘러들어가는 순간 사정은 달라진다. 상표가 부착된 채 본래와 다른 제품이 시장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브랜드 동일성을 잠식할 수 있다.
 

대법원 역시 유통 목적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 공동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결국 사안별 판단이다. 그러나 그만큼 불확실성도 남는다. 어디까지가 단순 수선이고 어디부터가 새로운 상품의 창출인지, 수선업자가 어느 범위까지 인지해야 책임을 지는지, 앞으로도 적지 않은 다툼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상식’은 시대와 함께 변한다. 그러나 법의 기본 원칙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재산권은 존중돼야 한다. 동시에 타인의 권리도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상표권은 사기업의 이익만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소비자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제도이기도 하다. 개인의 처분권을 앞세우는 논리가 시장 전체의 신뢰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곤란하다.
 

이번 판결을 곧바로 ‘합법의 선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성급하다. 사건은 환송되었고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한 재판이 다시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감정의 승패가 아니라 원칙의 정립이다. 상표가 지닌 의미를 가볍게 다루는 순간, 우리가 기대어 온 시장의 기준도 함께 흔들릴 수 있다. 상식은 존중하되, 그 상식이 공동의 질서를 해치지 않는지 냉정하게 따져보는 일. 그것이 법 앞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