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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보 사설] 법은 법조인을 위해 존재하는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가

2026-02-11 10:43:17
양심을 판 판사·검사·변호사, 그리고 그것을 부추기는 대형 로펌의 그늘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대한민국 법조계를 향한 국민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누적돼 온 불신과 좌절 그리고 반복된 배신의 결과다. 검사와 판사, 변호사라는 직역은 본래 이성과 지성 그리고 공공의 양심을 전제로 성립한 전문직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에서 국민들은 묻고 있다. 과연 법조인은 여전히 이성과 지성을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명성과 이익을 위해 그것마저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존재가 돼버린 것은 아닌가.

물론 대다수의 법조인은 여전히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밤을 새워 기록을 검토하고 외압과 유혹 속에서도 법과 양심을 붙드는 검사와 판사, 경제적 유혹을 마다하고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변호사들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문제는 더욱 뚜렷해진다. 소수의 일탈이다. 그러나 그 소수의 일탈이 만들어내는 파장은 치명적이다. 법조계라는 공동체 전체를 오염시키고 국민으로 하여금 법 자체를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 국민이 느끼는 분노의 본질은 ‘법조인의 비이성화’에 있다. 법은 이성의 산물이다. 감정과 이해관계를 절제하고 사실과 규범을 통해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는 장치다. 그런데 일부 법조인들의 언행과 판결, 변론을 들여다보면 이성은 사라지고 계산만 남아 있다.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이익이 되는가가 판단의 기준이 된 듯한 모습이다. 이 지점에서 법은 정의의 도구가 아니라 거래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타락의 한 축에는 대형 로펌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대형 로펌은 본래 고도의 전문성을 집적해 복잡한 사회적 분쟁을 해결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일부 로펌은 정의의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승소를 상품화하는 기업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매출과 수임액, 실적이 조직의 최우선 가치로 자리 잡으면서 양심은 비용으로 취급되고 공공성은 홍보용 문구로 소비된다.

승소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동원되는 구조, 패배를 막기 위해서라면 윤리의 경계마저 흐려지는 문화 속에서 일탈한 법조인들은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의뢰인의 이익이 최우선”이라는 말은 본래 변호사의 직업윤리를 설명하는 문장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판단을 정당화하는 만능 면죄부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의뢰인의 이익은 법과 정의의 테두리 안에서 추구될 때만 정당하다. 그 선을 넘는 순간 그것은 변론이 아니라 공범에 가깝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문화가 젊은 법조인들에게 학습된다는 점이다. 법조계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이 처음 마주하는 것은 법의 숭고함이 아니라 “이 사건은 얼마가 되느냐” “이 판을 어떻게 뒤집느냐”는 냉소적 계산이다. 이성과 지성은 실무의 현장에서 밀려나고 명성과 수입이 성공의 기준이 된다. 이 과정에서 양심은 순진함으로 조롱받고 원칙을 지키는 이는 현실을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국민이 느끼는 두려움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법을 어기면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법을 몰라서 당한다는 인식, 돈과 인맥이 없으면 법 앞에서 무력해진다는 체념이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사법 불신을 넘어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위기다. 법이 더 이상 최후의 보호막이 되지 못할 때 시민은 냉소와 분노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선진국의 법조계는 이 문제를 이미 직시해 왔다. 법조인의 윤리 타락이 민주주의의 후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형 로펌일수록 더 엄격한 윤리 기준을 요구하고 법조인의 일탈에 대해서는 직역과 지위를 가리지 않고 책임을 묻는다. 명성과 실적이 아니라 공공의 신뢰가 법조인의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제도로 확인해 온 것이다.

대한민국 법조계도 이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법조인이 계속해서 이성과 지성, 나아가 양심까지 팔아 이익 추구의 도구로 전락한다면 그 끝은 분명하다. 법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회피의 대상이 되고 사법부는 신뢰의 기관이 아니라 불신의 상징으로 남게 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대형 로펌을 포함한 법조계 전반에 대해 윤리와 공공 책임을 실질적으로 묻는 제도가 작동해야 한다. 법조인의 교육과 평가 기준 역시 매출과 승소율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신뢰 회복에 맞춰 재정립돼야 한다. 무엇보다 이성과 양심을 저버린 일탈에 대해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엄정한 책임 추궁이 뒤따라야 한다.

법은 기술이 아니다. 법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집행하라고 위임받은 이들이 바로 법조인이다. 그 약속을 스스로 파기하는 순간, 어떤 명성과 부도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 법조계는 선택해야 한다. 이성과 지성을 회복해 신뢰받는 법조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익 추구의 집단이라는 오명을 스스로 굳힐 것인가. 역사는 그 선택을 분명히 기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