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AI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전력 수요 급증이 현실화되면서 원전이 다시 건설업계의 중장기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주택과 플랜트 부문에서 선별적 수주 전략을 이어가던 대형 건설사들은, 안정적인 매출과 수익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원전 사업을 새로운 ‘캐시카우’로 삼고 전략적 확장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탈원전’ 기조로 회귀할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에너지 정책은 보다 유연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원전의 잠재적 위험성을 이유로 확대에 신중했던 정부가 신규 원전 검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건설사들은 정책 변화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최근 “국내에 원전을 짓지 않겠다면서 원전 수출을 언급한 것이 궁색했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원전 산업 생태계 유지를 위해서라도 일정 수준의 국내 수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정부 내에서도 공유되고 있다는 평가다. 향후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클러스터에 사용될 전력을 충족하기 위해 안정적인 공급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신규 원전이 필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건설사 입장에서 원전은 단순한 사업 다각화를 넘어 구조적 체질 개선 수단에 가깝다. 이미 주요 건설사들은 주택 경기 변동성과 플랜트 수익성 악화를 경험하며 외형 확대보다는 수익성 중심의 선별 수주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원전은 공사 기간이 길고 초기 진입 장벽이 높지만 일단 수주에 성공하면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매출과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크다.
이 같은 판단의 배경에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을 통해 축적한 트랙 레코드가 있다. 국내 건설사들은 바라카 원전 시공을 통해 설계·조달·시공 전반에서 경쟁력을 입증했고 이는 지금도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수주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핵심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경험을 토대로 향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R) 수주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해외 시장에서는 가시적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건설은 국내 유일의 신규 원전인 신한울 3·4호기를 시공 중인 가운데 미국 펠리세이즈 프로젝트를 통해 첫 SMR 착공을 기대하고 있다. 텍사스 마타도르 프로젝트 역시 기본설계(FEED) 계약 체결 이후 상반기 중 본계약 추진 가능성이 거론된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5·6호기 시공 주관사인 대우건설도 후속 건설 공사 계약이 비교적 빠르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물산은 유럽 지역에서 SMR 기본설계에 참여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고 DL이앤씨는 미국 SMR 기업 엑스에너지에 투자하고 필리핀 최대 전력사 메랄코와 협력하는 등 신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미국은 정책 지원과 원전 인허가와 프로젝트 추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건설사들이 주목하는 시장이다. 대규모 자금 집행이 불가피한 원전 사업 특성상 정책 뒷받침은 프로젝트 성사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꼽힌다.
증권가에서도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신대현 키움증권 연구원은 “시장에서 원전에 대한 수주 가시성과 프로젝트 규모, 건수를 주목하고 있다”며 “올해부터는 시장 요구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가 건설사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고 기대했다.
이상호 교보증권 연구원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적 기반은 장기간 진행되는 원전 프로젝트의 지속적인 모멘텀이 돼줄 것이다”며 “이에 따라 올해는 원전 프로젝트의 가시성이 더 뚜렷해지는 한 해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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