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는 지난해 말 대형언어모델(LLM) 'V3'를 공개한 데 이어 지난 20일(현지시간) 복잡한 추론 문제 해결에 특화된 AI 모델 'R1'을 선보였다. 이 모델들은 오픈AI의 최신 모델과 대등한 성능을 보이면서도 개발 비용은 획기적으로 낮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V3' 개발에는 557만 6천 달러(약 78억 8000만원)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오픈AI가 최신 챗봇 개발에 1억 달러(약 1439억원)를 투자한 것과 비교하면 딥시크는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비용으로 동등한 수준의 기술을 구현한 셈이다.
이러한 딥시크의 약진은 미국 정부의 대중국 AI 칩 수출 규제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뉴욕타임스(NYT)는 딥시크가 미국의 고성능 AI 칩 대신 저사양 칩을 활용하여 경쟁력 있는 챗봇을 개발함으로써 미국의 수출 규제가 실효성이 없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딥시크는 'V3' 개발에 사용된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미국의 수출 규정을 준수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 역시 딥시크의 기술 발전이 중국 AI 엔지니어들이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냈음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딥시크의 등장은 AI 반도체 시장을 독점해 온 엔비디아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동안 엔비디아는 고성능·고효율을 앞세워 고가의 AI 칩을 판매해 왔지만 딥시크가 저렴한 비용으로 고성능 AI 모델을 개발하면서 엔비디아의 전략이 위협받게 되었다. 27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6.97% 폭락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시가총액도 하루 만에 5890억 달러(약 846조 원)나 증발하며 미국 증시 역사상 일일 최대 손실을 기록했다. 엔비디아뿐 아니라 브로드컴 등 다른 반도체 기업 주가도 동반 하락했고 뉴욕증시 반도체 지수, S&P 500 지수, 나스닥 100 지수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미국 금융 서비스 기업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의 스티브 소스닉 수석전략가는 이러한 주가 폭락이 AI 관련 주식 거래를 주도해 온 주요 지수의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 업계도 딥시크 발 충격의 영향권에 들어섰다. 특히 엔비디아에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와 HBM3E 납품을 준비 중인 삼성전자는 단기적인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업계 관계자는 "일시적인 매출 감소 우려가 있지만 딥시크 역시 엔비디아 칩으로 AI 모델을 개발한 만큼 엔비디아의 시장 우위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모리 산업은 수요와 공급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가격 변동폭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한편 딥시크를 설립한 량원펑 대표에게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985년생인 량 대표는 중국 저장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2015년 대학 친구들과 헤지펀드 '하이-플라이어'를 설립하여 딥러닝 기법을 트레이딩에 적용하며 성공을 거뒀다.
이후 2023년 5월 독립적인 AI 기업 딥시크를 창업, 빠르게 성장시키며 AI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2019년부터 AI 개발을 위한 칩을 비축하여 약 1만 개의 엔비디아 GPU를 확보, AI 칩 클러스터를 구축한 것이 딥시크의 빠른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평가다.
장기적으로 딥시크의 등장은 AI 생태계의 저변을 확대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높은 칩 가격과 공급 부족으로 인해 AI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았지만 딥시크가 촉발한 저비용 AI 모델 개발 추세는 AI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저스틴 포스트 애널리스트는 "모델 훈련 비용이 현저히 낮아진다면 광고, 클라우드 AI 서비스를 사용하는 다른 소비자 앱 회사들의 단기 비용 편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딥시크의 부상은 한국 반도체 기업에 새로운 도전 과제를 안겨준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 심화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고성능 반도체 설계, 첨단 공정 기술 등에서 경쟁 우위를 유지하고 차별화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적극적인 연구개발(R&D) 투자와 차별화 전략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딥시크의 등장은 단기적으로는 위협 요인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반도체 기업이 기술 혁신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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